결국 한·일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마지막까지 결론을 알 수 없던 상황에서 지난 보름여간 수많은 공방과 추측이 난무했지만, 양 정상의 공식적인 첫 만남은 한·일관계에 또 하나의 상처만을 남긴 채 성사되지 못했다. 정부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의견이 분분하고 고민이 많았다는 뜻이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그런데 이후 정상회담 무산의 원인을 상대 탓으로만 돌리는 상황을 보며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일본은 양측 간 협의되지 않은 상황을 하나둘 언론에 흘리며 어렵게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보인 한국을 배려하지 않았다. 사전 조율도 되기 전에 공개된 많은 내용은 한국을 정상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조건을 건’ 정상회담 개최 의지는 본말을 전도시켰다. 어느 순간부터 ‘올림픽’은 사라지고, ‘한·일관계’로 사안이 경도됐다. 코로나19 확산 속 올림픽을 강행하며 국내외적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한국의 요구는 일본 정부를 더욱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더욱이 한국이 제시한 ‘성과 있는 회담’은 사실상 처음부터 이루어지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최근 2∼3년간 악화된 한·일관계가 정상회담으로 갑자기 해결되기에는 그 골이 너무 깊고,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양국 관계를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이전으로 회복시켜야 한다는 한국과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본의 인식 차이도 있다. 이에 한국의 입장에서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를 철회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강제징용문제 해결 없는 수출규제 철회는 ‘있을 수 없는’ 결정이다. 다시 말해, 갈등의 인식과 해결방식, 접근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강제징용문제의 해결 없는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는 기대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정부의 ‘조건’은 처음부터 상당히 어려운 조건이었다. 일본 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무조건 한국이 ‘일본이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가져와야 한다는 고압적인 자세는 결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은 이 문제에서 정말 자유로운가. 더욱이 관계 개선을 원하는 상대의 손을 잡지 않는 것만큼 오만한 것도 없다. 그러한 자세는 상대의 의지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오히려 반감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