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26일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위해 광장에 있는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를 계획대로 강행할 예정이지만 유가족 및 관련 단체의 반발이 거세 충돌이 예상된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세월호 유족들에게 기억공간 철거 공문을 전달하려 했으나 유족들의 거부로 구두 전달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조성 공사를 앞두고 지난 5일 유족 측에 세월호 기억공간에 대한 철거를 통보했으며 25일까지 기억공간에 있는 사진과 물품 등을 정리해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철거 기한이 가까워지며 기억공간 내에 있는 사진과 물품 등을 가져가겠다고 통보했고, 지난 23일부터는 박스 등을 가지고 기억공간을 직접 찾았지만 유족 등의 반발로 발걸음을 돌린 바 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대표 및 지원단체에서는 기억공간 철거를 거부하고 공사 중 이전설치나 공사 후 재설치를 요구하며 이를 위한 TF 구성을 요청하며 노숙농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경찰은 이들과 철거를 요구하는 보수성향 유튜버 등 일부 시민들의 충돌 우려로 기억공간 주위 출입을 통제 중이다.
◆서울시 “이미 두 차례 연장… 일정상 철거 불가피”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미 오랜 기간 지연된 새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를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7월 중 기억공간을 반드시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시는 “광화문 세월호 기억 및 안전 전시공간은 2019년 4월 개관 당시 그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존치·운영하기로 한 가설 건축물”이라며 “광화문광장 공사 착공 시기가 연장되며 1년간 연장 운영된 후 2021년 재연장돼 오늘에 이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 지연된 공사를 조속히 마무리해 시민 품으로 광장을 돌려드리기 위해선 기억공간 부지도 8월 초부터 공사를 본격화해야 하므로 7월 중에는 해체할 수밖에 없다”며 “이에 따라 유가족 대표 및 지원단체에 지난 26일 철거 예정임을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기억공간의 이전설치나 광화문광장 조성 후 추가 설치는 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시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이 지상 구조물 없는 형태로 계획된 것은 유가족들에게 일관되게 안내한 사항이고 특정 구조물을 조성·운영하는 것은 새 광장의 취지에 맞지 않아 시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시는 기억공간을 철거한 후에도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데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할 것이란 입장도 밝혔다. 시는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이 철거된다고 해도 세월호의 희생자와 유가족의 아픔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지자체 차원에서 가능한 힘을 다해 매뉴얼이 작동하는 안전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들 “시민들이 기억할 수 있게 존치해야”
유가족과 관련 단체들은 서울시가 기억공간을 강제 철거하지 말고 시민들이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도록 기억공간 이전 및 존치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때 광화문광장 공사 기간 동안 기억공간을 이전했다가 재설치하는 방향으로 논의했다고 주장하며 서울시의 강제 철거 통보에 반발했다.
4·16연대는 “기억공간 존치나 대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라며 “광화문광장이 아니더라도 서울 시내에 시민들이 오가며 볼 수 있는 곳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공사 중에는 임시 이전할 수 있고, 완공 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취지에 맞게 위치는 충분히 협의할 수 있다”며 “서울시는 이에 대한 대안 마련은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2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민변은 인권위에 기억공간 철거 중단과 시설의 재설치 방안 등 후속 계획을 수립·집행할 것을 서울시장에게 권고해 달라는 진정을 내고 긴급구제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민변은 “서울시의 기억공간 철거 강행은 국제인권법상 퇴행 금지의 원칙,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인권의 적극적 보장을 위해 부담하는 최소한의 의무와 적법절차 원칙을 위반해 피해자와 시민의 기억과 추모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적법한 계고 절차가 아닌 구두 통보와 구체적인 이행 기간 및 방법을 알 수 없는 공문으로 철거 강행 의사를 밝혀 최소한의 절차조차 준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