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중박)은 고 이건희 회장 고미술 컬렉션의 특징을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우리나라 전 시기와 전 분야를 포괄한다”고 정리했다. 이를 잘 보여주기 위해 개최 중인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2만1600여 점의 기증품 중 각 시기, 분야를 대표할 만한 77점을 가려뽑아 전시 중이다.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격하게 아끼고, 어디 내놓아도 꿀릴 것 없는 예술품이라 자부하는지라 더욱 특별한 유물이 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는 우리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려 하나의 장르가 된 진경산수의 절정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수월관음도’는 외국에서 우리보다 먼저 예술성을 평가한 고려불화다. 전시회에서 영상을 활용해 세 작품의 관람 편의를 높인 것도 빼어난 이런 가치를 고려한 것일 터다.
◆일본이 먼저 주목한 ‘귀한 몸’ 고려불화
고려불화는 최고의 예술성과 더불어 희소성으로 주목받는 유물이다. 세계를 다 뒤져도 전하는 것은 약 160점뿐이라고 한다. 워낙에 귀하고, 그런 이유로 몸값이 워낙 비싸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중박조차 내내 갖지 못하다가 2016년 수월관음도 한 점을 기증받으면서 고려불화 소장처로 이름을 올렸다. 사정이 이러니 대중들이 접하기 쉬운 유물이라 할 수도 없다.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 천수관음보살도, 수월관음도가 한 점씩 포함되어 중박은 소장품의 양과 질을 높이고, 대중들은 보다 수월하게 관람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건 특히 반가운 일이다. 천수관음보살을 그린 고려불화는 이 기증품이 유일하다니 더욱 특별하다.
고려불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일본이다. 사실 우리 조상들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예술품이지만 지금은 일본과 더 인연이 깊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전해지는 160여 점의 대부분인 130여 점이 일본에 있다.
고려 당대에는 우리에게 훨씬 많았을 이 특별한 작품들이 70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째서 일본에 더 많이 있을까. 긴 시간 온전하게 보관하는 게 쉽지 않고 전쟁, 화재 등의 희생물이 되기 십상인 종이 재질의 유물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는 조선 전기의 회화도 드물다. 이런 사정이 일본이라고 예외가 아닐 텐데 일본에 고려불화가 더 많이 남은 이유가 무엇일까. 동국대 최응천 교수는 “일본은 전쟁 중에도 사찰은 파괴하거나 약탈하지 않은 경향이 강해 헤이안 시대(794∼1185년), 가마쿠라(1185~1333년)의 유물도 상대적으로 많이 전한다”고 말했다.
전해지는 유물이 많다 보니 고려불화의 가치를 제대로 알린 것도 일본이었다. 그 시작으로 꼽히는 게 1978년 나라 야마토문화관에서 열린 ‘고려불화 특별전’이다. “한국미술사 연구에 한 획은 긋는 기념비적 전시회”로까지 꼽히는 특별전은 이전까지 중국의 송나라, 원나라의 것으로 여겨지던 고려불화의 국적을 회복시키고,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