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한국과 이탈리아의 결승이 열린 28일 지바의 마쿠하리 메세 B홀. 44-26으로 한국이 앞선 상황. 1포인트만 따내면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이탈아의 루카 쿠라톨리가 날아찌르기를 시도했지만 오상욱(25)이 이를 막아낸 뒤 상대를 찔렀다. 말 그대로 ‘금빛 찌르기’였다.
프랑스를 종주국으로 하는 펜싱은 유럽에서 먼저 뿌리를 내린 스포츠다 보니 오랜 기간 유럽이 독무대였다. 그러나 펜싱의 ‘유럽 헤게모니’는 20세기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변방인 아시아에서도 한국이 1990년대 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내더니 2010년대 들어서는 SK그룹의 집중적인 투자 속에서 펜싱 강국으로 거듭났다. 2012 런던에서는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내기도 했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단체전 결승에서 보인 기량은 편파판정도, 오심도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였다. 첫 주자로 나선 김정환이 1바우트를 5-4 리드로 끝낸 뒤 2바우트에 나선 ‘에이스’ 오상욱은 알도 몬타노를 상대로 한 점도 내주지 않고 5점을 내리 따내는 등 3바우트에 이미 한국이 15-6으로 크게 앞서며 사실상 금메달을 굳혔다.
한국 대표팀은 7바우트까지 35-20으로 앞서 나갔고, 8바우트에는 김정환 대신 후보선수 김준호(27)가 나섰다. 다 함께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한 배려였다. 김준호마저 ‘한국이어서 후보선수일 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듯 8바우트에서 엔리코 베레를 상대로 5-1로 압승을 거두며 편안하게 단체전 2연패를 완성했다.
경기 뒤 오상욱은 “제가 올해 3월 헝가리에 월드컵 참가 뒤 코로나19에 확진됐는데, ‘코로나에 걸려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구본길(32)은 2012 런던과 이번 도쿄 단체전 멤버 중 어디가 더 강하느냐는 질문에 “비교가 쉽지 않지만, 굳이 고르자면 런던이다. 노련미가 훨씬 낫다. 그때 뛰었던 원우영, 오은석 선배들이 길게 버텨준 덕분에 오상욱, 김준호가 성장할 시간을 벌었고, 한국 사브르가 세대교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고 두 선배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2012 런던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과 2016 리우 개인전 동메달, 이번 도쿄 개인전 동메달과 단체전 금메달까지. 역대 한국 펜싱 선수 중 올림픽 최다 메달 보유자가 된 김정환은 “도쿄에 오면서 한국 펜싱 선수 중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저는 인복이 정말 많은 선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