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들의 ‘유쾌한 올림픽’… 한국 스포츠 희망 밝혔다

김제덕·황선우·신유빈·안세영…
경기 주눅들지 않고 솔직 당당
거침없는 10대들에 국민들 매료
패배해도 웃고 털어내며 즐겨
과거 수직적 문화에 변화 바람
김제덕(왼쪽부터), 황선우, 신유빈, 안세영

엘리트 체육 중심의 한국에서 운동선수가 된다는 것은 엄격한 규율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지도자, 선후배 등 수많은 상하 관계가 선수들을 둘러싼다. 이 속에서 어린 나이와 짧은 경력은 ‘핸디캡’으로 작용하곤 한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어린 선수들은 기를 펴지 못하고, 때로는 뛰어난 재능을 잃기도 했다. 1988년 이후 올림픽에서 세계 10위권 성적을 놓치지 않았던 스포츠 강국 한국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2020년 도쿄에서 국민들은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나고 있다. 17세 소년 김제덕은 무려 23살이나 많은 대선배의 등 뒤에서 당돌하게 “오진혁 파이팅!”을 외치고, 18세의 황선우는 첫 올림픽 도전에서 세계적 선수들과의 대결을 앞두고도 “상승세를 탄 것이라고 봐주셔도 될 것 같다. 잘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이런 거침없는 모습으로 놀라운 성과도 올렸다. 김제덕은 3살 누나 안산과 ‘Z세대 콤비’를 결성해 지난 24일 양궁 혼성 단체전에서 이번 대회 한국의 첫 금메달을 따냈고, 이어 오진혁, 김우진과 함께 남자 단체전 금까지 휩쓸며 2관왕에 올랐다. 황선우는 200m 자유형에서 한국신기록을 새로 쓰며 결승에 오른 데 이어 아시아 선수들에게는 벽과도 같은 종목이었던 100m 자유형에서도 아시아신기록을 작성하며 결승 레이스를 펼쳤다. 역시 천재라 불리는 탁구의 신유빈(17), 배드민턴의 안세영(19)도 올림픽 무대에서 충분한 경쟁력으로 세계와 맞섰다.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김제덕이 지난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녀혼성단체전 8강전에 출전하며 포효하고 있다. 뉴시스

물론,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경험 부족으로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패배를 실패가 아닌 실수로 받아들이고 웃으며 털어냈다. 이번 올림픽의 10대 선수들이 이전과 가장 달랐던 모습이다. 황선우는 지난 27일 200m 결승에서 초반 150m까지 독주하고도 페이스 조절 실패로 7위에 그쳤지만 “완주해서 후련하다. 49초대에 턴한 걸로 만족하겠다”면서 주눅 들지 않았다. 안세영은 30일 이번 대회 1번 시드의 강자 천위페이와의 8강전에서 패한 뒤 “이 정도 열심히 해도 안 됐으니 더 열심히 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신유빈은 27일 32강에서 홍콩의 강자 두호이켐에게 패한 뒤 아쉬움에 훌쩍거리면서도 “재미있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김제덕은 개인전 충격 탈락 후에도 관중석에서 선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여전히 우렁찬 “파이팅” 응원을 보내는 중이다.

지난 29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수영 남자 100m 자유형 결승전. 대한민국 황선우가 5위로 경기를 마친 후 수영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몇 년간 한국 체육계는 지도자의 선수 폭행, 선수 간 폭력 문제 등 그동안 쉬쉬했던 엘리트 병폐들이 속속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변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고, 수직적 문화로 성과를 만드는 시대가 끝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돌한 10대 선수들이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국민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이들의 당당한 모습이 한국 스포츠의 미래 희망을 만들고 있다. 이것이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스포츠가 얻어낸 최고의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