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에 나서고 있는 한국대표팀이 대회 8일째인 30일 많은 의미있는 성과들을 쏟아냈다. 저마다 한국 스포츠의 역사 속에 길이 남을 결과물들이다.
이 중 가장 빛나는 것이 올림픽 양궁 사상 첫 3관왕이자 한국 하계올림픽 최초의 3관왕 배출이다. 여자 양궁의 샛별 안산(20)이 그 영광의 주인공이다. 안산은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와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6-5(28-28 30-29 27-28 27-29 29-27 <10-8>)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노메달’로 대표팀에 애를 태웠던 사격도 마침내 첫 메달이 나왔다. 일본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사격 여자 25 권총에서 김민정(24)이 비탈리나 바차라시키나(러시아)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8명을 선발하는 예선에서 8위에 그쳤지만 어렵게 올라간 결선에서는 경기를 주도하며 금메달 기대감을 키웠다. 다만, 막바지에 동점을 허용한 뒤 슛오프에서 1-4로 뒤져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다. 이로써 사격 여자 권총은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 김장미 이후 9년 만에 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단체전에서는 박상영(26), 권영준(34), 마세건(26), 송재호(31)가 뭉쳐 동메달을 따냈다. 준결승에서 일본에 아쉽게 패한 한국은 3∼4위전에서 중국을 45-42로 눌렀다. 에이스 박상영이 막판 역전을 이끌며 맹활약했다.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육상 남자 높이뛰기 예선에 나선 우상혁(25)은 2m28을 넘어 전체 9위로 1996년 높이뛰기의 이진택 이후 25년 만에 한국 육상 트랙&필드 선수로 결선 진출에 성공했다. 남자 100m 자유형에서 결선에 진출해 아시아 수영의 새 역사를 쓴 황선우는 이날 마지막으로 출전한 남자 50m 자유형 예선에서는 22초74의 기록으로 전체 39위에 그쳐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연장 때마다 ‘금빛 화살’… 마지막 10점 한발로 끝냈다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전이 열린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 안산(20)과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5세트까지 5-5 동점을 이루며 딱 한 발로 금메달 주인을 가리는 슛오프에 돌입했다.
보는 사람들마저 떨리는 순간, 오히려 안산의 ‘강철멘털’은 흔들림 없었다. 안산은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 먼저 발사대에서 과녁을 조준했다. 이윽고 시위를 떠난 안산의 화살은 10점과 9점의 경계에 꽂혔다. 가까스로 선에 걸친 운명의 10점. 금메달에 한층 더 다가간 결정적인 한 발이었다.
오시포바의 차례. 슛오프는 동점일 경우 과녁 중앙에서 더 가까운 곳에 쏜 선수가 승자가 된다. 하지만 안산의 10점에 흔들렸을까. 오시포바의 활을 떠난 화살은 8점에 꽂혔다. 안산이 한국 선수로는 하계 올림픽 역사상 첫 단일 대회 3관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날 안산은 결승뿐만 아니라 준결승전에서도 슛오프 접전을 펼쳤다. 매켄지 브라운과 5세트까지 5-5로 맞섰고, 안산은 여기에서도 10점을 쏘며 9점을 쏜 브라운을 제쳤다. 생애 처음 올림픽에 나서는 스무살 선수답지 않은 강심장과 침착함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안산은 경기 외적으로도 흔들릴 요인이 많았다. 안산이 24~25일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따내며 2관왕에 오르자 그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네티즌들은 과거 그가 SNS에 ‘웅앵웅’, ‘오조오억’ 등 여성 우월주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찾아냈고,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안산이 쇼트커트 머리를 한 것도, 광주여대에 다니는 것도 페미니스트기 때문이 아니냐는 억지 주장이 나왔고, 안산이 ‘페미니스트’이기에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황당무계한 말도 있었다.
대한양궁협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안산 선수를 보호해 주세요’, ‘악플러들을 처벌해 주세요’ 등의 글이 이틀간 수천 건 올라왔고, 양궁협회 사무실에 ‘안산이 사과하게 만들지 말라’고 촉구하는 운동도 벌어져 전화선은 불통이 됐다. 안산을 두고 젠더 갈등이 번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안산은 자신의 이름인 산(山)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이번 도쿄올림픽 양궁 중계에는 선수들의 심박수도 표시됐다. 활을 쏘는 순간 다른 선수들은 분당 130~150회를 오가기도 했지만, 안산은 100회 안팎, 두 자릿수로 내려갈 정도로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마지막 슛오프 때도 안산의 심박수는 분당 118회, 오시포바는 167회였다. 심장 크기의 차이가 메달 색깔을 가른 셈이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슛오프에서 10점을 꽂던 강심장의 소유자도 3관왕에 오르고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다소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안산은 “저 원래 되게 많이 울어요”라면서 “심장이 터질 것같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슛오프의 승리 비결에 대해 묻자 “속으로 ‘쫄지 말고 그냥 대충 쏴’라고 계속 되뇌었다”는 안산은 “지도자 선생님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이번 시합 때 잘할 수 있었다. 관중석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해준 대표팀 동료 등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특히 안산은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 파트너로 관중석에서 목이 터져라 ‘파이팅’을 외쳐 준 김제덕에 대해 “목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올림픽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떨렸다는 안산은 심장박동수가 유독 낮은 것을 두고 ‘혹시 저혈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농담 섞인 질문에 “아니에요. 저 건강해요”라고 답했다. 이로써 이번 올림픽 일정을 마친 안산은 “엄마가 해준 애호박 고추장찌개가 너무 먹고 싶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