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원전 200년 전후로 그리스와 로마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기원전 168년, 드디어 로마군이 그리스를 정복한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을 상상이나 했을까. 이후 그리스가 독립하는 데 무려 200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빈센초 벨리니의 대표작 ‘노르마’는 기원전 50년 로마가 점령한 또 다른 곳, 프랑스 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 지배를 받는 오페라 내용은 또 다른 식민지였던 아테네 극장에서 정복자와 식민지 이야기로 펼쳐진다. 로마가 아테네를 정복하고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 세운 ‘헤로데스 아티쿠스 오데온’에서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역사를 뒤로하고, 청중들은 그리스인과 관광객들 구별 없이 유명 오페라 작품을 멋진 공연장에서 설렘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마지막 하루!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 산책을 나선다. 눈앞에 담겨 있는 아크로폴리스 주변을 걷는다. 아랫동네 플라카 마을은 아직 하루를 시작하지 않았다. 조용한 거리를 걸으며 예쁜 마을의 작은 골목길을 살펴본다. 관객들에 둘러싸여 보지 못했던 작은 카페의 철문과 상점들의 간판이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미코노스나 산토리니에서 본 아기자기한 골목들처럼 작은 골목길의 민낯은 소박하고 정겹다. 닫힌 철문은 새벽 이슬을 얹고 있어 차갑게 느껴지고, 레스토랑의 빈 야외 테이블은 쓸쓸해 보이지만 골목길 돌담에 켜켜이 쌓인 사람들 흔적은 따스하게 다가온다. 거리 곳곳에 조용히 서 있는 유적들이 이야기를 건넨다.
낯선 거리에서 펼쳐지는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새벽 산책길은 언제나 흥미롭다. 작은 공원 오래된 건축물, 주변과 어우러져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원전 334년에 세워진 리시크라테스 기념비로 제전이 열린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무려 2300년이 넘었단다. 방치한 듯한 유적물조차 품은 세월이 놀랍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유적물의 클래스가 남다르다. 서양 문명 기원을 찾아 육로와 해로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둘러본 그리스, 나름 시간을 즐겼다고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틈을 가로질러 호텔로 돌아온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아크로폴리스와 아테네 거리를 다시 한번 눈에 담는다. 다시 올 날이 있겠지. 이번에는 방문하지 못했던, 고대사에서 미케네와 대등한 세력으로 소아시아 지역을 호령했던 트로이, 아테네와 힘의 균형을 이루며 또 다른 문명의 번성을 이루었던 스파르타, 올림픽 기원이 된 도시 올림피아, 그리스 12신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여겼던 올림포스산, 그리스 제2의 도시 데살로니키를 다음으로 미룬다. 또 다른 역사 속의 시간여행을 찾아 돌아올 것을 꿈꾸며 아테네 공항으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