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 0대0 접전, 후반 1대0에서 1대1로, 승부차기는 0대1에서 다시 1대1로 동점, 원점에서 다시 승부차기 연장. 점점 높아지는 중압감 속에 골문 앞으로 나서는 선수들 뒤에서, 각 팀 주장들은 이젠 차마 못 보겠다며 고개를 돌린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 21일 방송된 SBS 수요 예능프로그램인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 6화, FC액셔니스타 대 FC구척장신의 경기다. 조별리그 탈락이 걸린 이날 한판 승부는 모델 한혜진과 이현이, 송해나, 김진경, 차수민, 가수 아이린으로 구성된 FC구척장신이 첫승을 거뒀다. 쉴 새 없이 포효가 울려펴지고 땀으로 범벅됐던 경기장은 금세 울음바다가 된다.
‘골때녀’가 연일 호평 속에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골때녀’는 다양한 분야의 여성 방송인들이 아마추어 선수가 돼 팀을 이뤄 풋살경기를 하는 프로그램. 6월 방송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축구 못하는 여성들을 데려다 놓고 조롱섞인 코미디나 보이려 할 것이라는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반전 메시지의 강도가 높아진다. 그들은 축구가 본업인 양 훈련하고 경기장에서 긴장한다. 부상 투혼은 보는 이들까지 걱정시킬 정도. 지난 4회차 방송에서 FC개벤저스 안영미는 상대 선수와 얼굴을 부딪혀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경기를 뛰었다. 시청자들은 경기 내내 오른쪽 눈부위 멍이 진해지면서 부어오르는는 모습을 실황으로 지켜봤다.
◆인기 요인은?
인기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다른 예능 장치나 설정이 보이지 않고 프로그램이 경기에 충실한 데에서도 인기비결이 보인다. 경기상 주요 장면이 느린 화면으로 반복해 보여지는 것 등을 두고는 빠른 템포의 예능프로그램의 공식상 오점이라는 평도 있지만, 오히려 경기를 예능프로그램이 아닌 진지한 스포츠를 다루고 있다는 표시로도 읽힌다. 카메라의 시선들이 실제 경기처럼 공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방송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스포츠계에서 불투명한 내부세계, 각종 폭력과 이해관계상 다툼, 불공정이 얽혀 문제를 노출했던 것을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오히려 이들의 경기가 더욱 순수한 스포츠, ‘각본 없는 드라마’로 보인다.
강혜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촬영 기법을 보면 카메라를 여러 개 쓰며 경기를 실감나게 잘 다루면서도, 룰에 대한 설명이나 해설 등도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해 시청 가능층을 축구팬층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확연히 넓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2년 월드컵 스타들이 감독이라는 관리자 지위로 복귀해 나오게 됐는데, 2002년 당시 축구를 가장 즐겼던 연령층으로서는 현재 비슷한 자리에 올라 동질감을 느끼고 함께 추억을 소환하며 반길 수 있는 큰 장치”라고 설명했다.
최근 몇년간 꾸준히 일었던 여성들의 운동 바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여성에게 운동하는 즐거움을 강조하고 운동을 독려하는 서적 출판이나 오프라인 모임들이 활발했다. 기존 2030여성들이 학창시절 적극적으로 독려받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작용처럼, 어린 시절 친하지 않았던 운동인 축구나 농구를 하기 위해 스스로 모임을 꾸리고 체육활동을 하는 사례도 점차 흔해지고 있다.
강 평론가는 “새로운 여성 이미지를 갈구하던 2030여성들이 개그우먼 김민경이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처음 운동을 배우고, 그걸 굉장히 잘해내면서 잠재력을 발견해 나가는 것을 보고 열광한 바 있다”며 “이때 팬층이 형성됐고 이를 따라하는 여성들도 많았는데, ‘골때녀’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 나와 운동을 하며 체력이 좋아지고 축구가 느는 모습을 보며 그런 팬층이 더욱 확대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포츠가 보여주곤 하는 인생의 진리들이 고스란히 프로그램에 담겨 전해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실수에 대한 자책을 멈추고 앞을 보고 나아가야 한다. 실수한 팀원을 감싸 죄책감을 빨리 떨쳐버리게 하는 팀에게 승리가 돌아간다. 이해와 신뢰가 강력한 팀은 어떤 강자를 만나도 부서지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에겐 ‘임파워링’(empowering)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