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한민국 고도 성장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위스키가 있다. 어른들이 편의점 파라솔에서 마시던 위스키. 속을 챙긴다고 우유와 함께 마신 썸싱 스페셜(Somethig Special), 패스포트(Passport) 등이라는 제품이다.
이 위스키들에 붙는 수식어가 있었다. 바로 정통 스카치위스키라는 것. 그렇다면 과연 정통이 아닌 위스키는 뭐였을까? 그것은 바로 ‘유사 위스키’, 또는 ‘대중 양주’라고 불린 술로, 소주에 위스키 원액을 일부 넣은 제품들이었다. 백화양조의 ‘베리나인 골드’, 롯데의 ‘조우커’, 진로의 ‘길벗’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런 숙성 스카치위스키가 거대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찬스가 하나 찾아온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장을 찾은 수많은 미군이 3년 이상 숙성한 고급 스카치위스키를 맛본 것이다. 기존과 다른 부드러움과 터치감에 미군들은 환호했고, 전쟁에서 승리 후 미국 내 스카치위스키의 판매량은 최고치를 기록해 나간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성공의 길로 이어진 것이며, 위스키를 없애기 위한 반위스키법이 오히려 위스키를 중흥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결국 스카치위스키는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덕(?)에 최고급 증류주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다. 전 세계 200여 국에 수출, 약 6조원의 수출 규모를 가진 영국 최고의 문화 상품이 됐다.
이쯤 되면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위스키를 좋아하지 않았느냐는 삼류 음모론(?)도 생각해 본다. 재무부 장관 출신이었던 만큼 숫자에 밝았고 통찰력이 어마어마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까지도 승리로 이끈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위스키의 미래를 보고 스스로 엑스맨을 자청했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술의 세계관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