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뇌는 ’휴식‘이 필요해”…’멍 때리기‘의 효과

늘 바쁘게 살고 복잡한 생각·일 처리 하느라 뇌 쉴 틈 없어
쉴 때도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진정한 ’휴식‘ 없는 삶
멍 때리기, ’창조적 아이디어‘ 떠올리는데 오히려 도움되기도
아무 인지활동 하지 않을 때 활동하는 ’뇌 특정 부위‘ 있기도
“멍 때리기는 ’비효율적‘” 이제는 옛말…뇌, 가끔 ’리셋‘해줘야
멍때리기. 게티이미지뱅크

 

‘멍 때리기’라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넋이 나간 것처럼 그저 멍하니 있는 상태를 말하는 신조어다. 

 

멍 때리기는 대회까지 열릴 정도로 현대인에게 은근 인기가 많다. 이 대회는 지난 2014년 10월 27일 서울시청 잔디광장에서 처음 열렸고,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 대회의 취지는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하자는 것이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면서 바쁘게 사는 만큼 머릿속이 늘 복잡하게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가끔 다 비워내고 쉬어줘야 한다는 소리다. 

 

한 때는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비생산적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가끔씩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볼 때 멍 때리는 행동에서 세상을 바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 경우가 상당히 많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헤론 왕으로부터 자신의 왕관이 정말 순금으로 만들어졌는지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지 방법에 대해 생각하다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서 그는 잠깐 머리를 식히기 위해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했다. 그러다가 욕조 밖으로 넘치는 물을 보면서 우연히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왕관의 순도를 재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때 아르키메데스는 이 아이디어를 찾아낸 것이 얼마나 기뻤던지 알몸으로 목욕탕을 나서면서 “유레카!!!(Eureka!!!)”라고 외치며 집으로 달려갔다는 일화는 지금도 유명한 전설처럼 남아 있는 이야기다. 유레카는 고대 그리스어로 “알았다!”, “찾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멍때리기. 게티이미지뱅크

 

꼭 역사 속의 인물에 대한 비범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도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짤 때보다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멍하니 있다가 불현듯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국의 발명 관련 연구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20%가 ‘자동차에서 가장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다’고 답했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 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는 아이큐(IQ‧지능지수)를 쑥쑥 올리는 생활 속 실천 31가지 요령 중 하나로 “멍하게 지내라”를 꼽기도 했다.

 

그렇다면 멍 때리기처럼 복잡하고 심각하게 생각할 때보다 머리를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있을 때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을까? 

 

미국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지난 2001년 뇌영상장비를 통해 사람이 아무런 인지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를 알아낸 후 논문으로 발표했다. 특이한 것은 그 특정 부위는 사람이 생각에 골몰할 때 오히려 활동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 부위는 바로 뇌의 안쪽 ‘전전두엽’과 바깥쪽 ‘측두엽’, ‘두정엽’ 등이다.

 

라이클 박사는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이 특정 부위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라고 명명했다. 마치 컴퓨터를 ‘리셋’(reset‧초기화)하게 되면 ‘초기 설정(default)’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때 바로 뇌의 DMN이 활성화되면서 뇌가 ‘초기화’된다는 것이다.

 

리셋은 컴퓨터 용어로, 컴퓨터의 전원을 정상적으로 종료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전원을 차단해 긴급 종료 후 강제로 재부팅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DMN이 우리 뇌에 가득 차 있는 복잡한 생각들을 강제로 재부팅시켜 날린다는 것이다.

 

멍때리기. 게티이미지뱅크

 

DMN은 일과 중에서 몽상을 즐길 때나 잠을 자는 동안에 활발히 활동한다. 즉, 외부 자극이 없을 때다. 이 부위의 발견으로 우리가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도 뇌가 여전히 몸 전체 산소 소비량의 20%를 차지하는 이유가 설명되기도 했다.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데에도 DMN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자기의식이 분명치 않은 사람들의 경우 DMN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스위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환자들에게서는 DMN 활동이 거의 없으며, 사춘기의 청소년들도 DMN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DMN이 활성화되면 창의성이 생겨나며 특정 수행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연이어 발표됐다. 일본 도호쿠대 연구팀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때의 뇌 혈류 상태를 측정했다. 

 

그 결과, 백색질의 활동이 증가되면서 혈류의 흐름이 활발해진 실험 참가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내는 과제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뇌가 쉬게 될 때 백색질의 활동이 증가되면서 창의력 발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유명인과 일반인의 얼굴 사진의 차례대로 보여준 후 현재 보고 있는 사진이 바로 전 단계에서 봤던 사진의 인물과 동일한지를 맞추는 ‘엔백(n-back)’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실험 참가자는 DMN이 활성화될 때 유명인의 얼굴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일치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멍하게 아무런 생각 없이 있을 때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의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기존의 인식을 뒤엎은 연구 결과였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잠깐의 먼 산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를 할 시간조차 점점 잃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발달로 쉴 때조차도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서 뇌를 열심히 돌린다.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느닷없이 멍 때리기가 대회까지 열릴 정도로 현대인의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쉴 때도 뇌를 굴리며 바쁘게 생각해야 할 정도로 진정한 ‘휴식’을 즐기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잠깐의 멍 때리기가 그렇게 절실하다는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