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실감 나던 살갗을 다 벗겼다. 피부 따위는 원래부터 붙어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뼈와 근육으로 이뤄진 조각의 표면이 매끈하게 떨어졌다. 위팔 긴 뼈와 미끈한 상완근, 상완근을 끝을 감싸며 시작되는 팔꿈치 아래 상완요골근, 장요측수근신근, 수근요골굴근, 수장근, 이어지는 근육과 손가락 끝 1㎝가 될까 싶은 가장 작은 뼈마디까지. 전시장 입구, 권위 높은 좌대 위에 놓인 인간의 오른쪽 팔은 한 번 탄생한 뒤에는 누구도 재조립이 불가능할 만큼, 치밀하게 짜인 고도의 발명품처럼 보인다. 크고 작은 뼈와 근육들이 만들어내는 곡선은 위풍당당하면서도 우아하고, 무언가 움켜쥐려는 듯 구부러진 손끝은 만물을 만들어낸 오른손의 힘이 느껴진다. 구상 인체 조각으로 유망한 작가였던 조각가 최수앙이 전과 다른 스타일의 신작 조각 ‘손’을 선보였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학고재 본관에서는 최 작가의 개인전 ‘최수앙:Unfold(언폴드)’가 열리고 있다. 조각, 설치, 회화 21점을 선보인다.
수술 전까지 최수앙은 극사실의 인체를 실감 나게 재현해내는 조각가였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2008년 작품 ‘날개’는 손들의 비명이 들릴 듯 소름 끼치도록 사실적이다. 2009년 아버지를 모델로 제작한 작품 ‘히어로’는 탄력 없이 늘어진 피부, 파란 정맥이 비치는 살갗, 표정이 만들어낸 주름으로 작품 대상인 아버지의 감정과 집념, 인생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작품이다. 이 같은 작업들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가장 정확한 답안을 써내야 정답으로 인정되는 문제 같았다. 세밀한 묘사, 묘사 속에 담긴 서사, 서사가 전달하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치열한 의식과 태도로 빚어졌다. 그런 작가에게 처음으로 양팔을 못 쓰게 된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전환점이 된 시간으로 설명했다.
“수술 후에도 전시가 있긴 했지만, 미리 제작했던 작품들을 전시한 것이었다. 실은 1년 넘게 작업을 하지 못했다. 작업을 쉬는 동안 습관이 완전히 차단됐다. 손을 묶어두고 습관적으로 손에서 나오는 움직임이 강제로 차단된 거였다. 그게 열린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다. 조각으로 상상의 여지를 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작품을 멈춘 공백기, 자신의 조각적 습관들이 몸에 배어 있음을 깨닫고 에코르셰에 주목하게 됐다고 한다. 에코르셰는 피부가 없는 상태로 근육이 노출돼 있는 인체 그림이나 모형으로, 미술 해부학 교육에 사용하는 기초 자료다. 16세기부터 미술가들이 작업실에 구비해 놓았던 것이고, 작가 역시 책이나 모형으로 숱하게 들여다보고 외우다시피 한 것이었다.
다시 들여다본 에코르셰에서 그는 오류를 많이 발견했다고 한다. 에코르셰의 전통이 오래됐으니 오류가 있는 것도 당연했다. 다시 본 에코르셰에는 과장이나 축소도 많아 정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체를 다뤄온 그에게 중대한 지식의 기초였던 것이 모두가 사실은 아니며 일부는 허구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에코르셰를 달리 봤다. 더 나은 재현, 더 정확하고 진짜 같은 재현이 아닌, 빈틈이 있는 이야기, 상상을 만드는 소재로 재발견한 것이다.
수술 후, 그는 에코르셰를 소재로 삼았다. ‘손’에 이어 거대한 조각 및 설치작업인 ‘조각가들’, 에코르셰의 일부를 딴 수채화 드로잉 ‘프래그먼츠’ 연작이다.
‘조각가들’을 구성하는 에코르셰 조각가들은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흑인인지, 백인인지 또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한다. 신체 부위를 그렸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전까지, 다채로운 색감이 아름다운 드로잉들은 백합이나 꽃다발, 하늘을 나는 새, 풀 위에 앉은 나비의 옆 모습 등을 먼저 연상시킨다.
전보다는 힘이 빠졌을 팔, 느슨해졌을 손으로 만들어진 신작들 앞에 선 관람객은 정답을 묻는 엄격한 문제가 아닌, 열린 상상을 환영하는 퀴즈를 푸는 것처럼 자유롭고 여유롭다.
신작들에서 작가의 시선은 외양밖에 보지 못하는 인간의 시각 너머 인체를 향한다. 작가는 겉에서 안으로, 껍데기에서 본질을 향했고, 보는 이의 해석은 한층 두터워지게 됐다. 극사실적 조각은 감탄을 자아냈지만, 빈틈 많은 조각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2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