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통신선 복원됐다고 북한 ‘올인’은 금물

좋은 징조이지만 확대해석 곤란
北 진정성 모르는데 과속 안 돼
임기 9개월 남은 文정부 자중
차기 정부 위한 레거시 고민을

지난 7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간 통신연락선 복원에 전격 합의했다. 이는 북한이 작년 6월 9일 일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문제로 모든 통신연락선을 일방적으로 차단한 지 413일 만이다. 북한은 통신선 차단에 이어 6월 16일에는 판문점선언의 주요한 성과 중 하나였던 판문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이 4·27 판문점선언 발표 3주년을 전후해 재개되고 통신선이 다시 연결된 것은 장기간 경색 상태에 놓여 있었던 남북관계 개선의 청신호로 환영할 일에 틀림없다. 통신선이 복원되면서 경색 국면이던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이면서 낙관적인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통신선 복원을 계기로 남북화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희망 섞인 전망이 제기된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경색을 돌이켜보면 북한이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통신선 복원에 합의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그보다는 내부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전술적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 제재, 코로나19, 홍수로 인한 북한의 3중고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 방역 때문에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고, 그 여파로 북·중 교역도 거의 중단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쌀을 비롯한 생필품 가격과 환율도 크게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도 북한은 전군 지휘관·정치간부 강습을 주재하는 등 내부적으로 체제 단속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 추산에 의하면 북한은 금년에도 곡물 부족분이 50만∼80만t에 이를 전망이지만 수입량은 10만∼20만t 정도에 불과하다. 부족한 분량이 적기에 제공되지 않으면 북한은 금년말 심각한 기아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이상현 세종연구소장

남북 통신선 복원이 남북관계에 좋은 징조이긴 하지만 그 의미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통신선 복원은 대북 전단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고, 한국정부가 대북전단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충분한 상응조치가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통신선 복원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차단했던 통신선을 복원한 것이지 새로운 진전이나 양보가 아니므로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전향적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북한은 개성사무소 폭파, 서해 공무원 피살, 전방위 해킹 공격, 미사일 도발 등에 대한 사과나 발언은 전혀 없다.



이미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 일각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연기론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아예 연합훈련 중단을 압박하고 나섰다. 문제는 한·미가 연합훈련을 다시 연기하거나 축소한다 해도 그것이 곧 비핵화 대화 진전이나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김여정 부부장이 공개적으로 연합훈련 중단 요구 담화를 내놓은 이상 그 때문에 훈련을 또 연기하거나 축소하면 한국이 북한의 겁박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의 소지를 제공해 한국사회 내 논란을 자초할 뿐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북한발 ‘막말 피로증’도 심각하다. 2018년 이후 한·미 연합훈련은 이미 지휘소훈련 수준의 최소한으로 축소됐는데, 그마저 북한이 중단을 요구한다면 이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전작권 전환 검증을 위해서도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기 9개월을 남긴 문재인정부의 가장 큰 구조적 제약은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번 통신연락선 복원을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살릴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남북정상회담, 북·미 대화 재개 등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관계에서 과속의 유혹을 떨치고 한·미 간 조율과 함께 차기 정부를 위한 레거시(legacy·유산)를 고민해야 할 때다. 한국을 향한 수많은 외교안보의 격랑이 밀어닥치고 있는 지금 한국은 북한에 올인해 소중한 외교자원과 에너지를 소진할 때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