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가격표/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연아람 옮김/민음사/1만8500원
‘당신의 목숨은 얼마입니까.’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얼마짜리 인간인지 생각해본 적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이 가진 재산이나 소유물로 자신의 가치를 매기고, 다른 이는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사회적 위치로 스스로를 평가한다. 하지만 이 같은 측정방식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에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값어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는 걸까.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예시를 들어 ‘생명 가격표’가 가진 문제를 짚어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극심했던 지난해 봄, 이탈리아 의료진들은 병상 포화인 상태에서 어느 연령대의 치료를 포기했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의 배경에는 자국민과 외국인의 가격이 다르다는 관념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보험료를 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는 ‘9·11 테러’로 숨진 약 3000명의 희생자에게 매겨진 ‘가격표’다. 당시 미국 법무부가 임명한 보상 기금 특별 위원장 케네스 파인버그는 비경제적 가치와 피부양자 가치, 경제적 가치를 합산해 보상액을 차등 산정했다. 비경제적 가치에는 모든 희생자에게 25만달러라는 동일한 금액이 책정됐지만, 피부양자 가치는 한 명당 10만달러씩 추가되는 식이었다. 경제적 가치는 희생자의 소득을 기반으로 책정됐기에 격차가 가장 컸다. 산출 값은 희생자의 평생 기대 소득, 각종 수당 및 기타 혜택 등을 계산한 뒤 희생자의 실효세율에 맞춰 조정했다. 그 결과 보상금 최저액과 최고액 차이는 최대 30배까지 차이가 났다.
이렇게 계산된 보상금은 각종 논란을 일으켰고, 보수와 진보 등 진영을 가리지 않고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파인버그는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사건 때도 민간 기금을 맡았는데, 소득이나 피부양자의 수와 상관없이 모든 유가족에게 같은 금액을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형사 제도에서도 생명의 가치를 비교해 결과에 반영하는 일이 부지기수로 벌어진다. 경찰이나 정부기관 종사자들의 생명은 노골적일 정도로 더 중요시된다. 그뿐 아니라 법에는 희생자의 성, 인종, 사회적 지위, 전과 기록 등을 보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그런 것들에 따라 차별한다. 통계를 보면 미국에서 혐의와 기소에 관한 검찰의 결정과 양형은 피해자가 누구이고 가해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 바로 지난해 미국을 뒤흔든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다. 지난해 5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백인 경찰 데릭 쇼빈에 의해 9분29초간 목이 짓눌려 숨졌다. 혐의는 고작 2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비무장 흑인을 과잉 진압한 것은 물론 주변 경찰관과 시민들 역시 방관하는 모습이 드러나 세상에 충격을 줬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인종 차별·경찰 폭력 반대 시위를 촉발했다. 최근 미네소타주 헤너핀 카운티 지방법원은 가해자 쇼빈에게 22년6개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 책은 인간 생명에 가격표가 붙는 일이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런 부당함에 대항할 힘을 기르자는 취지로 쓰였다. 저자는 생명의 가치가 불공정하게 매겨질 때마다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어떤 경우에도 억만장자 한 사람의 죽음이 평범한 사람 100명의 죽음보다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기업이나 정부가 고작 몇 푼을 아끼느라 사람의 생명을 불필요하게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생명 가치를 불공평하게 판단해 기본 인권을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책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