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국적 여성 A씨는 2018년 ‘마사지업소에서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취업 알선자를 통해 한국에 왔다. 그러나 A씨가 간 곳은 일반 마사지업소가 아닌 성매매가 이뤄지는 퇴폐업소였다. A씨는 “소개비를 물어내야 한다”는 협박에 4차례 성매매를 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도망을 치려다 붙잡혀 감금됐고,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성매매 피의자’라는 낙인이었다. 경찰이 A씨를 성매매 혐의로 입건한 데 이어 광주지검도 A씨의 성매매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A씨는 “피해자인데 무혐의가 아닌 기소유예가 나와 억울하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는 A씨가 인신매매 피해자라는 점을 인정해 검찰에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성매매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강요에 의해 성매매를 한 ‘피해자’가 ‘피의자’ 취급을 받는 일이 잇따르면서 경찰이 성매매 피해자 식별 기준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장에서 성매매 피해자를 구분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조사 모델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특히 A씨처럼 외국인 여성이 취업 알선자 등에게 속아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언어소통 어려움 등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해 피의자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태국 국적 여성 B씨의 경우 2018년 한국에 온 뒤 취업알선업체에 여권을 빼앗기고 성매매를 시작했다. B씨는 지난해 2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오피스텔에 들이닥치자 4층에서 몸을 던져 크게 다쳤다. 경찰은 B씨의 병실에 찾아가 성매매 방법 등은 조사했지만 성매매 강요 여부 등에 대해선 확인하지 않았다. 이후 B씨의 사정을 알게 된 이주여성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이 부상으로 치료받는 상황인데도 조사를 강행했고,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조치 또한 없었다”는 취지로 진정을 제기했다. 지난 4월 인권위는 “(B씨가) 성 착취 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집단에 속하므로 인신매매 피해 식별조치를 선행할 필요가 있었지만 경찰이 성매매 시작 경위 등 피해자 식별을 위한 질의를 하지 않아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경찰청장에게 성매매 피해자에 대한 식별절차와 보호조치 관련 매뉴얼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경찰은 이번 연구로 객관적인 조사 모델이 마련되면 성매매 피해자를 비교적 수월하게 식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올해 말 연구가 끝난 뒤 시범운영 등을 거쳐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 새 조사기법을 현장에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