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통일 충북동지회’(청주 간첩단)가 사법 및 검찰개혁·여성운동 등 그간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들이 다루지 않던 대중적인 분야를 활동 영역으로 삼은 건 북한의 대남전략 노선이 반영된 영향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하고 여론이 첨예하게 맞서는 등 분열을 가장 잘 조장할 수 있는 지점과 요소를 북한이 분석하고 침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北 지령 아래 사법·검찰개혁 개입 시도
◆프놈펜·선양에서 北 공작원 접선
간첩단이 북한 공작원과 접선하는 과정은 할리우드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2018년 4월 캄보디아 프놈펜 시내 ‘왓 바텀(Wat Botum)’ 공원에서 북한 공작원을 만난 과정이 대표적이다. B씨는 북한 공작원을 알아차리고도 바로 접촉하지 않았다. 이후 공작원의 뒤를 따라 공원을 한 바퀴 돈 뒤 각자 다른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왓 오나롬’ 사원으로 이동했다. 이후 사원 인근 ‘껀달시장’ 앞에서 공작원에게 다시 접근한 뒤 그제서야 함께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호텔식당 룸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최종 임무가 전달됐다. 혹시 있을지 모를 우리 당국의 미행을 따돌리려 한 것으로 파악된다.
C씨가 중국 선양에서 공작금 2만달러를 수령한 과정도 극적이다. 북한 당국은 2019년 10월 하달한 지령문에서 “중국 지역에서 자금을 조달받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면서 “무인함을 통한 공작금 조달 루트를 새롭게 개척하겠다”고 알렸다. 공작금 수령 과정에서는 다양한 암호와 은어가 사용됐다. 북한은 공작금 수령 장소에 10시에 도착할 수 있으면 “...10.com”으로, 10시30분에 도착할 수 있으면 “...1030.com”으로 메시지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B씨는 일행이 공작금을 수령하고 한국에 무사히 도착하면 “주문한 상품을 잘 받았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보내겠다고 북측에 보고했다.
보안수칙은 두말 할 것 없이 철저했다. 북한은 “컴퓨터 등 장비는 중고를 구입해 실명 등록이나 구매 흔적을 최대한 피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컴퓨터는 3년에 한 번, 무선 모뎀과 심카드, 연락용 이메일은 6개월마다 교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문했다. 또 △연락용 컴퓨터는 OS 시스템을 새로 설치해 보관할 것 △암호화 프로그램 보관에 최대의 안전성을 기할 것 △중요 내용은 은어로 메모만 하고 철저히 삭제할 것 △컴퓨터에 삭제 프로그램을 설치해 연락한 흔적은 철저히 삭제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관련자들은 해당 혐의를 강하게 반박하는 중이다. A씨는 세계일보 취재진과 만나 “국정원의 100% 조작극”이라며 “재판에서 진위가 다 밝혀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상 조작 피해자는 계속 나타날 것”이라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
◆“이상한 사람들… 지역사회서도 피해” 별안간 사라졌다 2∼3년 전 다시 활동
“그 사람들은 한 마디로 이상했다.”
청주 간첩단이 포섭을 시도한 것으로 확인된 노동계 인사의 증언이다. 이 인사는 “노사 문제 해결에서는 노동청 등 정해진 절차를 먼저 거쳐야 하는데, 대책위를 꾸려서 ‘당’하고 함께해야 한다며 일을 확대하려 했다”며 “집요했다”고 기억했다.
이번에 당국에 구속 또는 불구속된 간첩단 일원들과 접촉한 인사 A씨는 지난 6일 세계일보 취재진과 만나 “(충북) 지역사회에서는 그 사람들(청주 간첩단)을 피하려는 공감대가 있다”며 “과거에 있었던 여러 사건 때문”이라고 밝혔다.
A씨가 언급한 사건 중 대표적인 건은 충북 노동계의 대부로 불리는 고(故) 정진동 목사의 도시산업선교회 사건이다. 이들 간첩단은 1990년 후반 노동자 해고 사건을 도운 정 목사를 “노동자들의 고귀한 투쟁 의지를 돈 몇 푼에 팔아넘긴 사람”이라며 ‘정진동은 악마’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농성했다. A씨에 따르면 이들은 1990년대에 이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별안간 사라졌고 2∼3년 전부터 다시 나타나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북한은 청주 간첩단에 A씨를 포섭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당국은 2019년 1월 북한이 간첩단에 “작년 12월 본사(북한)에서 요구한 A씨의 신상정보와 사업전망 등에 대한 자료 보고가 지연되고 있는데 이른 시일 내에 대책해 주기 바란다”며 A씨를 특정해 그의 구체적인 사상동향과 신상정보, 포섭 방법에 대해 수집해 보고하라는 지령을 내린 사실을 파악했다. 북측은 ‘A씨와 연계해 노동운동을 전개하라’는 지시도 함께 하달했다.
A씨는 “처음에는 (간첩단이) 해고문제로 연락이 왔길래 조언을 해줬더니 계속해서 선을 넘었다”며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나중에는 나도 선을 그었고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은 A씨를 간첩단의 피해자로 판단하고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당국에 따르면 청주 간첩단은 A씨 증언처럼 충북 지역에서 고립된 채 활동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간첩단은 이전 간첩 사건들과 달리 북한에서 대호명(암호명)을 부여받거나 계급장 수여식을 치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놓고 청주 간첩단이 강령으로 내건 ‘인민대중제일주의’와 관련된 활동 방식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내세운 인민대중제일주의에 따라 남한 사회의 저변에 침투하려는 조직이기 때문에 과거 ‘비중 있는’ 간첩단과는 달리 격식 등을 생략하고 이용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