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항일시인 신석정 고택’ 재개발로 철거 위기

市 미래유산 14호 ‘비사벌초사’
아파트 건립 사업지구에 포함

“일제에 항거한 민족혼 서린 곳”
전북 18개 단체, 보전운동 돌입
재개발사업 지구에 포함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인 전주시 남노송동 고택 ‘비사벌초사’.

항일시인인 고 신석정(1907~1974) 시인의 생생한 발자취가 남아 있는 전북 전주시 남노송동 고택 ‘비사벌초사’(전주시 미래유산 14호)가 재개발사업 지구에 포함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였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개발 논리에 밀려 민족혼이 서려 있는 고택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고택 보전 범시민운동에 돌입했다.

 

전북지역 18개 문학예술단체 대표 등이 참여한 비사벌초사 보존대책위원회는 10일 신석정 시인의 올곧은 선비정신과 민족정신을 잇고 고택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한 보전 운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를 위해 재개발을 통해 대규모 아파트를 건립하려는 재건축추진위원회에 문화재와 공존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전주시와 시의회에는 현 고택 인근에 신석정문학관을 건립하는 방안을 건의·촉구할 방침이다. 시인의 발자취를 잇고 문화유적의 보존을 요구하는 집회와 서명운동 등도 함께 벌이기로 했다.

 

비사벌초사는 주택 재개발사업이 추진 중인 전주시 남노송동 병무청 인근에 자리한 고택이다. 신석정 시인이 1961년 부안에서 전주로 이사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14년간 살던 곳이다. 고택 이름은 전주의 옛 지명 ‘비사벌’과 볏짚 등으로 지붕을 인 집을 뜻하는 ‘초사’를 결합해 시인이 지었다. 1994년 한 교사 출신 부부가 매입해 가옥으로 쓰다 2018년부터 신석정 시인의 문학세계를 동경하는 문학인과 학생, 관광객 등을 맞는 전통찻집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역 문학예술인들이 고택 보존 운동에 나선 것은 시인의 남다른 민족혼 때문이다. 시인은 일제에 항거하며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절필까지 했으며,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에 맞섰다. 1961년 조국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시 ‘단식의 노래’ 등 세 편을 발표했다가 남산 대공분실에 끌려가 혹독한 취조를 받고 풀려난 일화도 있다. 시인은 생애 5권의 시집을 냈는데, 이 중 ‘빙하’, ‘산의 서곡’, ‘대바람 소리’ 등을 비사벌초가에서 집필했다.

 

전주시는 2018년 이 집이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보고 ‘전주시 미래유산 14호’로 지정했다.

 

백명주 대책위 공동대표는 “개발 논리에 밀려 역사 문화적 가치가 함부로 훼손되지 않도록 전주시가 고택 보존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해 문화도시로서 자긍심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지역 재개발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는 낡은 주택들을 허물고 1300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건축해야 하기 때문에 고택을 이축하는 등 방안을 찾을 것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