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의 귀향/도노히라 요시히코/지상 옮김/후마니타스/1만8000원
나가사키의 종/나가이 다카시/박정임 옮김/페이퍼로드/1만3800원
상쾌한 가을 날씨가 펼쳐진 1976년 9월 3일 오후, 정토진종 홋카이도 사찰인 이치조지(一乘寺)의 젊은 승려 도노히라 요시히코(殿平善彦)는 중고차를 마련한 기념으로 친구와 함께 홋카이도에서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인 슈마리나이댐과 주변 호숫가를 드라이브 중이었다. 까마득하게 펼쳐진 호수, 푸른 물결을 헤치고 나가는 작은 배, 울렁거리는 섬 같은 작은 바위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주변의 나무들….
“어머, 젊은 수법사 스님! 마침 잘 만났네요, 보여드릴 게 있는데, 혹시 함께 절에 가보지 않겠어요?”
홋카이도로 이민 온 식민 지배인의 자손인 도노히라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교토의 류코쿠대학을 다니며 종교인 평화운동을 접했고,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고민했으며, 일본 사회에서 재일 코리안이 맞닥뜨리던 차별 문제를 보며 괴로워했던 그 아니었던가.
고켄지에서 찾아낸 ‘매·화장 인허증’에는 본적을 비롯한 최소한의 희생자 정보가 적혀 있었고, 그 가운데 조선인 희생자 15명은 한국 출신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도노히라와 동료들은 이를 바탕으로 강제징용 역사와 희생 정황을 조사하는 한편,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을 찾아 나섰다.
희생자들의 유골 발굴 과정도 쉽지 않았다. 유골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댐에서 1km 떨어진 곳이 사유지인 데다가 마을 주민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다행히 도노히라와 동료들의 노력으로 1980년 5월부터 희생자 유골 발굴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1984년까지 모두 16구를 지상으로 인도했다.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한동안 유골 발굴은 이어지지 못했고, 1992년에야 희생자 유족이 확인된 유골 2구가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장됐다.
1997년 여름, 한국과 일본, 재일코리안 젊은이들이 어우러져 13년 만에 다시 슈마리나이에서 희생자 유골 발굴을 재개했다. 2005년부터 사루후쓰촌 아사지노에서도 유골 발굴이 시작됐고, 2012년 아시베쓰시와 2013년 시가시가와정 에오로 발전소 유수지에서도 각각 유골 발굴 작업이 이뤄지면서 조선인 강제노동의 진실도 발굴됐다.
“다음날 새벽 3시부터 바로 일을 시켰습니다. 낮은 산을 깎아 궤도 화차에 흙을 실어 날라 낮은 땅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깜깜해질 때까지 일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날이 갈수록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늘어났지만 필사적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약해진 상태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인은 마구잡이로 몽둥이를 휘둘러 때렸습니다. 박치기를 당해 혹이 난 것처럼 머리가 울퉁불퉁해졌습니다. 쇠 지렛대로 두들겨 맞아 그대로 땡볕 아래 연못에 빠져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도망치다 붙잡히면 맞아 죽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경우를 본 것이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었습니다….”
유족이 확인된 유골들은 한국으로 봉환됐지만 희생자가 조선인이 분명했지만 유족을 확인하지 못해 반환하지 못한 유골 역시 적지 않았다. 본원사 삿포로 별원의 71구와 슈마리나이에서 발견된 4구, 사루후쓰촌 아사지노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34구, 비바이 상광사에 안치된 6구 등 모두 115구. 한·일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이들 유골은 2015년 9월 한국으로 봉환됐다. ‘70년 만의 귀향’이었다.
홋카이도 이치조지 주지인 도노히라 요시히코의 책 ‘70년 만의 귀향’은 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유골 발굴 및 귀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현장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한 이야기, 도망가지 못하도록 밖에서 자물쇠를 걸어두는 감금노동, 이른바 ‘다코베야’의 현실, 엄혹한 작업 환경 속에 쓰러져가는 노동자들이 모습 등 당시 참혹했던 현장 상황을 전하는 한편 강제노동을 하다가 희생된 조선인 115명의 유골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과정도 담담한 필치로 전한다.
또 다른 책 ‘나가사키의 종’은 제2차 대전 당시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피폭된 나가이 다카시 나가사키의대 교수가 직접 그 참상을 전한 책이다. 출간 70여 년 만에 한국에서 번역돼 나왔다. 책은 1945년 8월9일 오전 11시2분, 원자폭탄이 투하된 순간부터 그 직후의 모습, 구조 작업, 피폭 후 피부가 녹고 눈이 머는 등의 피해 실태까지 원폭의 참상을 세세하게 전한다. 아울러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 움직임을 경계하며 반전, 평화의 메시지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