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언제 끝날지 모를 기약 없는 희생… 간호사 절반 "우울·불안" [코로나 최일선의 '사투']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또 버텨
과도한 업무에 정서적 상실 가속
“이직·사직 고려 경험” 64% 달해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에서 전신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확진 환자를 돌보고 있다. 하상윤 기자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와 CRRT(투석치료기) 등이 필요한 중환자는 계속 늘고 있는데,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듭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습니다.”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지난해 1월20일) 이후 ‘574일’. 모두에게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코로나19 병동에서 근무하는 이수연(가명) 간호사에게 이 숫자의 무게는 더 무겁게 느껴진다. 언제까지 늘어날지 가늠할 수 없는, 세고 싶지 않은 숫자다. 이 간호사는 오늘도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집을 나선다.

 

계속된 격리병동 근무에 ‘번아웃’(소진)을 겪었다는 김서현(가명) 간호사도 출퇴근길에 회의감에 휩싸여 걸음을 멈추곤 한다. 김 간호사는 15일 “확진자가 폭증하는데도 출퇴근길에 방역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 ‘내가 이렇게 일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최전선 의료진들에게도 우울과 불안감, 스트레스가 파고들고 있다. 생사의 기로에서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확진자 수와 매일 반복되는 과중한 업무에 치여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다.

오후 3시가 넘었지만 바쁜 업무 탓에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간호사들의 점심 식사가 그대로 놓여 있다. 하상윤 기자

세계일보가 대한간호협회(회장 신경림)와 함께 지난 9∼13일 코로나19 현장 간호사 167명을 대상으로 근무환경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장기화하는 코로나19 사태에 정서적·체력적 소진 모두 심각한 상태였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2.1%(87명)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불안감 또는 우울감을 자주(‘매우 자주’ 포함) 겪는다’고 답했으며, 43.7%(73명)는 ‘코로나19 사태 전보다 매우 더 체력적으로 소진됐다’고 응답했다.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도 코로나19 사태 전후로 큰 차이가 나타났다. 사태 전 직업에 불만족(‘약간 불만족’, ‘매우 불만족’ 포함)한 경우는 22.2%(37명)에 불과했으나, 사태 이후엔 53.9%(90명)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직업에 만족하고 있다’는 응답은 18.6%(31명)에 그쳤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려한 적이 있다’는 응답 역시 64.1%(107명)에 달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간호사는 이직·사직을 생각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간호사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지쳤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의료진 심리상담을 맡고 있는 국가트라우마센터 이정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감염병 현장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이 자부심이나 성취감을 갖고 버티고 있는데, 정서적 고갈 등은 사실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의료진들도) 다들 인간이기 때문에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많이 지쳐 있어 더 염려가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