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 계단에 거꾸로 매달려”… 아프간 카불 공항, 탈출 인파로 ‘아비규환’

활주로에 시민들 수천명 몰려들자 미군 발포… “사망자 여러 명 발생”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탈환하자 공포와 혼란에 빠진 수도 카불 시민들이 16일(현지시간)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카불을 떠나는 비행기를 타려고 트랩에 매달려 있다. 트위터 캡처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재장악하자 수도 카불 공항은 탈출을 위해 몰려든 수많은 인파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수천명의 시민이 한꺼번에 활주로로 몰려들자 이들을 해산하려고 미군이 발포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월남 패망 당시 ‘사이공 탈출’보다 더 급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16일(현지시간) 외신 등에 따르면 보면 예상 밖의 빠른 속도로 친미 성향 아프간 정부가 붕괴하고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자 카불 시민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날이 밝기도 전에 수천명의 시민이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동영상에는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많은 시민이 뛰는 모습이 담겨 있다. 총성이 산발적으로 들리는 가운데 아이를 업거나 안은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게시물 작성자는 “시민들이 패닉에 빠져 공항을 향해 달려가고, 미군이 총을 발사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슬프다”라고 적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항에는 더 많은 인파가 몰렸고, 시민들이 활주로를 장악하고 문이 열린 여객기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어떻게든 여객기에 타려고, 탑승 계단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도 보였다. 밀려든 인파로 도저히 여객기가 뜰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공항 당국은 모든 민항기의 운항이 중단됐다고 이날 오후 발표했다. 아울러 아프간 항공 당국은 카불 영공 통제가 군에 넘어갔다며 항공기 노선 변경을 권고했고 이미 미국 유나이티드항공과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등 여러 외항사가 아프간 영공을 피하기 위한 항로 조정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은 “미군의 발포로 공항에서 아프간인 여러 명이 사망했다고 보안군 소식통이 전했다”고 보도했다. SNS에는 “미군이 카불 공항에서 질서 유지를 하려고 발포하는 바람에 민간인이 죽었다”는 글과 함께 여성을 포함한 여러 명이 바닥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카불 공항을 지키는 미군은 지난 24시간 사이 공항에서 무장한 남성 2명을 사살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한 미국 관리는 로이터에 “공항에 몰려든 군중이 통제 불능 상태였다. 발포는 혼란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고위 당국자는 AP통신에 이날 카불 공항에서 비행기에 매달렸다가 추락한 여러명을 포함해 총 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군 관계자를 인용해 최소 3명이 미군 수송기에 매달렸다가 활주로에서 숨졌다고 전했다.

 

16일 탈레반을 피해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카불 국제공항에 모여있는 있다. AFP연합뉴스

민항기에 이어 군용기의 운항도 중단됐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카불 공항에서 모든 군사 및 민간 항공편이 중단됐다”고 밝혔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커비 대변인은 미국과 터키 등에서 파견한 군부대가 현장을 정리하고 있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탈레반은 과거와 달리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과거 탈레반이 통치했던 5년 동안 극단적인 샤리아(이슬람 율법) 적용을 경험했던 시민들은 여전히 그 때의 공포를 기억한다. 탈레반 통치 당시에는 음악, TV 등 오락이 금지됐고 도둑의 손을 자르거나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하는 가혹한 벌도 허용됐다. 특히 수도 카불 시민들은 그동안 미군과 국제동맹군, 국제 NGO단체와 협업하거나 외국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한 경우가 많기에 탈레반이 부역자라며 자신들을 처단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