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을 20년 만에 다시 손아귀에 넣은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은 지난 15일(현지시간) “고립된 채 살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정상국가, 합법적인 정부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과거 집권기(1996∼2001년)엔 극소수의 국가만이 탈레반 정권을 인정했다. 이번엔 사정이 좀 다르다. 중국과 러시아가 아프간에 들어설 탈레반 새 정권을 인정할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서다. 미국도 가능성을 열어 뒀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에 따르면 과거 탈레반 정권을 인정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정도다.
사우디는 “이슬람 원리에 따른 생명 및 재산 보호, 치안 유지”란 전제 조건을 달면서도 “아프간 국민의 선택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역시 “아프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요한 표용적 정부란 목표를 탈레반 대표들과 함께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탈레반과 고위급 회담을 가진 바 있는 인접국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도 탈레반 통치를 인정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UAE는 탈레반 정권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건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이다. 아프간 주재 중국 대사관과 러시아 대사관은 정상 운영 중이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중국은 아프간 인민이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존중한다. 아프간과의 우호 협력 관계를 계속 발전시키길 원한다”며 탈레반 정권을 인정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러시아 외무부도 “카불의 상황이 안정되고 있다”며 “탈레반이 공공질서를 회복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과거는 잊고 실용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자국 군사기지 여러 개가 있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탈레반은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저항하며 태동했다.
다만 자미르 카불로프 아프간 담당 대통령 특별대표는 “러시아는 탈레반 정권을 인정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행동을 면밀히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도 “향후 아프간 정부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탈레반 행동에 달려 있을 것”이라면서 탈레반 정권을 인정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