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78년 만에 카자흐스탄에서 고국으로 모셔온 ‘봉오동 전투’의 주역 홍범도(1868∼1943년) 장군의 국민 분향소가 마련된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현충문에는 광복절 연휴의 마지막 날이자 온·오프라인 참배가 시작된 지난 16일부터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서너 살배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부모부터 지팡이를 짚고 온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행렬을 추모 제단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며 바라보는 한 중년 남성이 지난 16일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앞서 그는 홍 장군에게 경례하고 묵념과 방명록 작성으로 이어진 30초 남짓 참배를 마쳤지만, 자리를 떠나기 아쉬운 듯 보였다.
10여분 후 눈길을 돌려보니 떠나기 아쉬운 듯 제단을 바라보다 기자의 인사에 미소 지은 중년 남성의 손에는 국화 다발이 들려 있었다. 자신을 50대라고만 소개한 그는 홍 장군 유해의 봉환이 국민의 역사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에게도 ‘타국에 잠든 독립운동가가 많다’는 말을 건넸더니 “이제는 우리나라가 국력 등 많은 면에서 유해 봉환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화답했다.
이 같은 유해 봉환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묻혀 지나쳤던 과거의 이야기를 후손에게 알리는 기회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나아가 이를 계기로 “후세들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토대로 세계 무대를 자신 있게 누비게 될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그는 내년 대통령 선거 후 들어설 차기 정부도 독립운동가 유해 봉환에 적극 나서주기를 주문했다. 독립운동가를 모셔오는 데는 정치색은 상관없다고 강조하면서 “선진국일수록 보훈 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다”고도 했다.
“백두산 호랑이, 날으는 홍범도 장군님께서 드디어 조국 품에 안기셨습니다. … 우리 후손은 당신의 뜻을 받아 통일된 선진강국을 일궈나갈 것입니다.”
너무 길어 방명록에는 차마 다 쓰지 못했다며, 쑥스러운 듯 기자에게 내밀어 보여준 그의 스마트폰 메모장에는 홍 장군에게 건네려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유해 봉환’ 중요하지만… 고려할 것도 많은 게 사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홍 장군의 유해를 포함해 현재까지 총 144위(位)의 독립운동가 유해가 우리나라에 모셔졌다. 해외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사업은 1946년부터 민간 차원에서 추진해왔으며, 75년부터는 보훈처가 주관하고 있다.
역사적인 측면 등에서 중요한 일이지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게 보훈처 등의 설명이다. 먼저 유해가 묻힌 국가와의 외교관계 등이 변수로 영향을 줄 수 있고, 현지 한인 지역사회에서 봉환을 어떻게 여기는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수여하면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과 카자흐스탄 정부에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장군을 가장 사랑했던 고려인 동포께도 깊이 감사드린다”고 예를 갖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홍 장군은 현지 고려인들의 자부심이자 정신적 기둥으로 평가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