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삶과철학] 경험기계

가상현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현실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가상현실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세상처럼 말이다.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은 그것을 철학적으로 묻고 답한다. 그가 ‘경험 기계’라고 부른 기계에 연결되면 내가 꿈꾸는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 기계가 현재의 가상현실 기계와 다른 점은 기계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경험만 할 수도 있고 우리 삶처럼 무작위의 경험을 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 기계에 연결되고 싶은가?

노직은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현실과 공유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우리는 앞에서는 멋진 척 칭찬을 받지만 실은 뒤에서 비웃음을 받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현실’이지 가상현실 속의 경험만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또 그 현실을 혼자만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노직은 이 사고 실험을 통해 사람들은 가상현실이 주는 경험이 우리가 추구할 유일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음을 말해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험 기계에 연결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가상현실이 주는 경험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심리적 경향 때문은 아닐까.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변화를 위해서는 새롭게 노력해야 하고 위험이 따르기도 하니, 경험 기계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혹시 우리는 ‘매트릭스’처럼 이미 경험 기계 안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는 믿음도 환상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연결된 경험 기계 밖으로 나오길 원하겠는가. 아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미 경험 기계 안에 있든 아니든 익숙한 세상을 떠나는 것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꼭 기계가 주는 경험이 싫어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