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삶을 담는 공간… 편리함과 여유를 짓는다” [이슈 속으로]

2021년 ‘젊은 건축가상’ 영예의 수상자들

두 대학 동기 獨 유학후 의기투합
기이함과 특이함 속 실용주의 추구
좁은 공간 지어진 ‘연희공단’ 독특
“집짓기 도전?… 아름다운 욕망 필요”

최대 용적 확보보다는 ‘최적’ 추구
막대한 돈 쏟아붓는 도시재생사업
기반시설엔 변화 없어 안타까워
“개발 보다 사람이 우선인 도시돼야”
집사기보다 힘든 게 집짓기다. 오죽하면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고 한다. 더구나 아파트는 자고 일어나면 값이 올라 있는데 유지·관리는 힘들고 미래 값어치는커녕 매매조차 장담할 수 없는 ‘나만의 집짓기’는 설령 의지와 돈이 있어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집짓기에 나선다면 당신이 꼭 만나야 할 사람은 ‘건축사’다. 우리나라 건축사는 건축사법이 제정된 1963년 이래 아직 2만3000여명에 불과하다. 현실과 싸우며 척박한 이 땅의 건축문화를 일궈나가는 이들을 격려하기 2008년 ‘젊은 건축가상’이 제정됐다. 총 49팀이 응모한 올해 영예의 주인공은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 이세웅·최연웅 공동대표, 구보건축사사무소 조윤희 대표, 아키후드건축사사무소 강우현·강영진 공동대표다. 이 중 아파랏.체와 구보건축사사무소 이야기를 세계일보가 들어봤다.
자신들의 작품인 ‘홍은상가’ 1층에 자리잡은 사무소 앞에 선 아파랏.체 건축사사무소 이세웅 소장(왼쪽)과 최연웅 대표. 남제현 기자

◆“도구, 망치, 간단한 연장”, 아파랏.체

‘아파랏.체’는 두 대학 동기가 독일로 유학까지 같이 다녀와 차린 건축사무소. ‘단순한 것’ ‘기이한 것’ ‘지속가능한 것’으로 ‘아파랏.체’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설명한다. 특히 ‘기이함’에 대해 이세웅 소장은 “알아갈수록 오묘한 것을 기이한 것이라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최연웅 대표는 “특이한 형상을 가졌지만 기능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고 설명을 더했다.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소수인 독일 유학파로서 지니고 있는 학풍에 대해 이들은 역시 실용주의를 꼽았다. “미국은 (건축에서) 상품으로서 매력적인 것에 더 집중하는 듯해요. 여기에선 독일처럼은 못 해도 다만 ‘집은 비싼 돈 안 들이고 합리적 가격에 지어서 유지관리도 되도록 간단하게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태도는 남아있죠. 그러면서도 우아하게요.”(이 소장)

2018년 서울 연희동에 지어진 ‘연희공단(貢緞)’이 본보기다. 가파르고 길도 좁으나 전망 좋은 궁동공원 산자락 223㎡ 면적 대지에 연면적 341㎡인 지상 2층, 지하 1층 주상복합건물을 지었다. 동네 분위기에 어울리는 옅은 자색과 짙은 갈색이 섞인 환원벽돌로 세워진 건물은 저물녘이면 자색 비단처럼 광이 나서 ‘공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건축주가 ‘연희동이 좋아 단독주택을 짓고 싶다’고 찾아오셨어요. 그런데 자금 압박도 있다 보니 임대공간을 몇 평 넣을지, 상가는 ‘작은 거 두 개냐, 큰 거 하나냐’를 같이 고민하며 지었죠.”(이 소장)

이세웅 ,최연웅 건축사 2021.8.11 남제현 선임기자

건축주와 첫 만남은 소개팅과 비슷하다. “먼저 전화나 메일이 오죠. ‘어디 땅이 있어 신축하고 싶다’고…. 그러면 약속을 잡아 만나는데 서로 어떤가 탐색합니다. 작업 이야기뿐만 아니라 1년 넘게 인간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 서로 ‘케미(궁합)’를 보는 거죠.”

제대로 된 주택 설계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연희공단 정도면 아무리 빨라도 3개월이다. 설계도면만 150∼200장 정도가 필요한 작업이다. “설계도면이 끝날 때쯤이면 시공사 선정에 들어가죠. 저희는 건축주와 함께 시공사를 결정해요. 도면을 보내 견적을 받는데 돈만 보는 게 아니라 이전 어떤 작업을 했는지, 그리고 대표와도 이야기를 해보죠.”

시공사와 계약을 맺으면 건축주와는 다시 감리계약을 맺곤 한다. 건축주를 대신해서 온갖 궂은일을 챙기고 건물이 잘 지어지도록 살펴야 하는, 고된 일이다. 물론 대형빌딩은 설계사와 감리사가 분리되어야 하나 주택이나 소규모 건물은 그렇지 않다. “설계사가 감리를 안 하면 건물이 순식간에 망가져요. 돈만 받으면 끝이 아닌 직업이고, 또 결과물을 새로운 포트폴리오로 삼아야 하니 건물이 잘 나오길 원하는 건축주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거죠. 감리를 못 하는 경우요? 있죠. 그러면 ‘망가지겠구나’하고 포기를 하죠.”(이 소장)

아파랏. 체 건축사무소의 ‘연화공단’

시공 기간은 그야말로 ‘10년’ 늙을 수도 있는 시기다. 신축 현장이 너덧 군데면 돌발상황이나 민원은 거의 매일 발생한다. “양질의 건축사무소를 골라야 하는 이유죠. 건축사를 잘 고르면 시공사도 양질이 붙어요. 그러면 10년까지는 늙지 않아요.”(최 대표)

건축비는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설계사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벽돌 찍어내듯 집을 지을 때와 이처럼 건축주·건축사·시공사가 서로 긴밀히 연계해 집을 지을 때 대략적인 건축비 차이를 묻자 두 건축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시공에 1.4배, 설계에 0.1배를 더해 1.5배 정도 차이 날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 “같은 돈이 있어도 누구는 아파트를 사고 누구는 집을 짓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구가 있어야 하고 긴 여정을 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어야 집을 지을 수 있고, 아니면 아파트에서 편하게 사는 게 정답입니다.”(이 소장)

구보건축사사무소 조윤희 대표가 사옥에 마련된 전시공간에서 ‘전봇대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소설가 구보씨처럼 일상적 시선으로”, 구보건축사무소

“한때 사회적 역할이 없는 직업인 줄 알고 망설였던 시기도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회와 건강한 마찰을 일으키는 직업이었어요. 학교와 싸우고 구청과도 싸우고, 또 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하는데 그런 게 저의 건축사로서 사회적 역할 아닌가 싶습니다.”

의대·공대 가기 싫었던 이과 고등학생 시절 일찌감치 건축가로 갈 길을 정했다는 조윤희 구보건축사사무소장. 그렇지만 긴 학업과 실습을 거치면서 ‘이 길이 맞나’ 몇 번 되물었다고 한다. “돈 많은 재벌들 집 좋은 곳에 지어주는 그런 일 할까 봐 설계하기 싫었던 때가 있었어요. 건축가가 그런 일 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고군분투하면서 여기서 싸우고 저기서 싸우고 그런 일 하는 지금이 더 좋아요. 의미 있는 일을 많이 찾을 수 있더라고요.”

조윤희 구보건축사무소 소장. 이재문기자

‘건축가’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좋아하게 된 건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정평 난 이로재종합건축사무사의 건축가 승효상 밑에서 일 배우던 시절이다. “신입 때 산속 구릉지에 불교 체험센터 만드는 일을 거들었습니다. 구릉지다 보니 건축가가 작업하기 위한 밑 작업을 하는데 등고선을 그리고 다시 고쳐 그리는 단순한 작업을 3개월이나 했어요.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는데 그러다 깨달았죠. 질서가 없는 자연 상태를 가공해서 무언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수단으로 해석하는 것이 도면화 작업이라는 걸요. 3D(입체)를 2D(평면)로 변화시키는 건축가가 되기 위한 훈련이었던 거죠.”

그러다 다시 미국 유학을 떠나 현지 건축사무소에서 일까지 하다 귀국해 2015년 구보건축사사무소를 열었다. 신장개업 건축사는 일을 가리지 않고 맡았는데 공교롭게 2017년에는 ‘구룡마을’과 ‘은마아파트’라는 대도시 서울의 두 상징적 공간을 건축가로서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시 공영개발로 사라질 예정인 구룡마을과 서울 강남 변모의 역사를 간직한 은마아파트·은마상가의 현재를 기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우리는 허가된 곳에 살아서 삶에 필요한 가스, 전기, 수도, 하수관이 제공된 상태에서 사는데 구룡마을은 이런 것 없이 자연환경에 내던져서 살아가야 했던 옛날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입니다. 마치 아마존 소수부족 같은 공동체로 모여 살 때 어떤 건축형태가 드러나는지 볼 수 있죠. 전기를 밖에서 끌어다 쓰는 식으로 모든 것을 자력 조달하다 보니 화장실 배관도 밖으로 설치되는 등 내장이 다 노출된 도시, 모든 것이 날 것으로 드러난 집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은마상가는 서울 강남 한복판 지하에 그처럼 활력 있는 재래시장이 존재한다는 게 놀랍죠.”

 

조 대표의 건축 이야기는 ‘도시’, 그것도 ‘망가진 도시’로 자주 이어졌다. “사람이 차를 피해 다녀야 해요. 인도도 엉망진창이고, 사람이 편리하고 쾌적할 수 있는 도시에서 너무나 멀어진 거죠.”

구보건축사무소의 ‘워크 프롬 홈’

서울시가 한창 벌였던 도시 재생사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여기(서계동)도 도시 재생한다고 700억원을 넣었다는데 막상 주민은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해요. 도시는 기반시설만 해결해주면 알아서 잘 해나가는데 그런 건 개인이 할 수 없으니 나라에서 해줘야 하죠. 그런 중장기 관점없이 벽화, 그리고 도로에 색칠하는 데 돈을 써버리면 기반시설에는 변화가 없는 거죠.”

서울 이화동에 지어진 2층 건물 ‘워크 프롬 홈(Work From Home·2019)’도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부동산 개발의 본능인 ‘최대’가 아닌 ‘최적’을 추구했다. 이미 우리 사회가 최대 용적을 확보하는 건물이 최대 수익을 안겨주는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건축법규상 4층까지 건물을 올릴 수 있는 조건인데 2층으로 낮췄다. 그 결과 확보해야 하는 주차장 면적이 줄어들면서 값진 공간인 1층 전부를 주차장으로 쓰는 악수(惡手)를 피할 수 있었다. “이화동 같은 땅은 보통 사층까지 올리는데 그러면 주차법규 때문에 주차장으로 쓰느라 일 층이 다 없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필로티 주차장만 보면서 걷게 된 거예요. 면적이 작아도, ‘주차할 필요가 없다’해도 그래요. 사실 주차장 확보도 국가에서 해줘야 하는 역할인데 그걸 ‘각자도생’으로 하라는 시스템이다 보니 도시가 이렇게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