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제한 규정’ 개정 목소리 마음만 먹으면 쉽게 법규 회피 가능 원래 취지 맞게 자회사 등 포함해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취업제한 명령을 회피하기 위해 ‘탈법’ 행위를 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취업제한 명령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법은 취업제한 대상 기관을 열거하는 식으로 좁게 규정해 대자본가들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참여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정부가 재벌의 탈법을 조장한다, 지침을 주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법(특경가법)은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죄 등을 저지른 경우 ‘유죄 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실형을 받은 경우 형이 종료된 날로부터 5년간, 집행유예를 확정 받은 경우엔 집행유예 기간이 종료된 날로부터 2년간 관련 기업체 취업이 금지된다.
취업할 수 없는 기업의 범위는 특경가법 시행령에 담겨 있다. 시행령 10조는 ‘유죄 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를 6개 항목에 걸쳐 명시해놨는데, 이 중 4개 항목이 공범 또는 제3자와 연관된 기업이다.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연관된 기업보다 공범이나 제3자와 관련된 기업에 대한 제한 규정이 더 많은 셈이다. 이렇게 되면 당사자가 실질 지배하고 있는 기업이라도 공범 또는 제3자가 관련돼 있지 않다면 취업제한 기업에서 제외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취업제한 규정이 만들어진 ‘목적’을 지적한다. 대기업 총수가 회사를 상대로 중대범죄를 저지른 이후에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사실상 총수가 영향력을 미칠 경우엔 포괄적으로 취업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만약 기업 총수만 처벌받고 이를 도와준 이사들이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 되레 취업제한을 안 받는 상황이 발생해 이에 대한 비판이 계속 있어왔다”며 “현행법 시행령은 ‘공범’ 등이 관련돼야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데, 꼭 공범이 아니더라도 당사자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경우에는 취업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법을 꼼꼼히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취업제한의 원래 취지는 범죄자가 경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경영에는 자회사, 손자회사 등이 포함되는 것이다. 그 부분을 명확하게 확장해서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