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즐기는 명품다큐의 향연

EBS국제다큐영화제 ‘눈길’

코로나 사태 속 일상의 소중함 부각
29개국 64편 29일까지 TV로 방영
韓·네덜란드 수교 60주년 기념 섹션
‘안네 프랑크를 찾아서’ 등 특별공개
배급·투자 논의 비즈니스 미팅 신설
다큐 제작자·업계 연계의 장 마련도
‘안네 프랑크를 찾아서’

‘일상의 특별함을 담다(Normal Is Now Special).’

제18회 EBS국제다큐영화제(EIDF2021)가 23일 개막했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면 이번 주는 선별된 세계 각국의 ‘명품다큐’를 안방에서 온종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영화제 슬로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잃어버린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자는 취지를 담았다.



2004년 시작된 EIDF는 국내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다큐멘터리영화제다. 올해는 수잰 크로커 감독의 ‘최초의 만찬’을 필두로 9개 섹션 29개국 64편을 선보인다. 세계 최대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암스테르담다큐멘터리영화제(IDFA) 개최국 네덜란드와 수교 60주년을 맞아 ‘한-란 수교 60주년: 네덜란드 특별전’ 섹션도 개설했다. 한국 다큐멘터리 산업 발전을 위해 참신한 기획력과 넓은 시야를 가진 창의적 다큐멘터리 창작을 지원하는 ‘인더스트리’ 행사도 27일까지 5일간 진행된다.

형건 EIDF 사무국장은 23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의 매력에 대해 “우리 인생에 대해 여러 장면들을 직접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극영화를 잘 안 보게 될 정도로 빠지게 된다”며 “진짜 이야기가 주는 묵직한 감동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큐멘터리가 가진 공익적인 메시지도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소비돼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점에 있어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산업에 더 관심 갖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세계 각국 다큐멘터리 안방서 즐긴다

올해는 본고장 네덜란드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나볼 수 있는 특별전이 눈에 띈다.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섹션으로 총 4편의 네덜란드 다큐멘터리를 선보인다. 먼저 대중들에게 ‘안네의 일기’로 잘 알려져있는, 2차 세계대전으로 희생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를 회고하는 ‘안네 프랑크를 찾아서’가 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헬렌 미렌이 내레이션과 프리젠터를 맡아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죽음에 대하여’

IDFA에 공식 초청됐던 두 작품도 포함됐다. 한국인 입양아 감독이 다양한 문화를 녹여 새로운 형태의 장례문화를 만들고자 나선 암스테르담의 장례연구가를 다룬 ‘죽음에 대하여’, 2차 세계대전과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으로 요동치던 격변의 시기 1940년대에 네덜란드의 식민지 인도네시아에서 유모로 살았던 여성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그들이 부른 내 이름’이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록밴드들을 통해 네덜란드 대중가요를 조망해보는 ‘락앤롤 네덜란드!’도 포함됐다. 요아나 돌너왈드 주한 네덜란드 대사는 EIDF를 통해 “한국과 네덜란드 두 국가 간 관계에 대해 이해도를 향상시키며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개막작 ‘최초의 만찬’은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촬영한 작품이다. 북극에서 불과 400㎞ 떨어진 곳에 사는 크로커 감독은 쟁여 둔 모든 식료품을 없애고 사냥, 낚시, 채집으로 가족과 1년간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1년 동안 모든 끼니를 직접 해결해가며 그녀와 가족들은 한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노동이 필요한지 깨닫는다. 한 가족의 경험을 풀어냈지만, 환경과 공동체, 연대의 소중함까지 담겨있다.

‘한니발 홉킨스와 안소니 경’

한 명의 인물을 따라가며 주인공의 삶과 세계를 탐구하는 작품들로 구성된 ‘클로즈업 아이콘’에서는 올해 영화 ‘더 파더’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안소니 홉킨스를 다룬 ‘한니발 홉킨스와 안소니경’이 기대된다. 웨일스 출생인 홉킨스가 캘리포니아를 너무 좋아해 미국으로 이주한 사연, 어린 시절 고생담 등을 풀어냈다. 그는 1992년에 개봉한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박사역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배우다.

‘타임머신을 샀다’

최근 다큐멘터리의 경향과 EIDF의 지향점을 알아보는 ‘컨템포러리 다큐 파노라마’와 ‘무형다큐제’도 눈이 간다. 기상천외한 타임머신을 들이밀며 재치 있게 논해보는 이 시대의 새로운 소통을 다룬 ‘타임머신을 샀다’(박연), 마슈하드 동물원의 벵골호랑이와 조련사의 이야기인 ‘마야’(잠시드 모자데디·앤슨 하트포드), 댄서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쿠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쿠바 댄서’(로베르토 살리나스) 등 볼 만한 작품들이 다수 포진했다.

‘마야’

페스티벌 초이스 경쟁 부문은 예년과 동일하게 글로벌 부문과 아시아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한다. 글로벌 부문에는 8개국 6편, 아시아 부문에는 6개국 7편의 작품들이 선정됐다. ‘다큐시선’, ‘명의’ 등을 연출하고 이번 글로벌 경쟁 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김윤영 EBS PD는 이날 “심사기준은 구성, 소재의 참신성, 미학적 수준, 공감 가능성 등이며 작품의 주제가 식량 주권에서부터 기후변화, 망명, 장애를 딛고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실현하며 사는 삶의 모습까지 다양해 심사를 넘어 감상만으로도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고 전했다.

◆“기생충처럼 한국 다큐멘터리도 오스카 수상 가능해”

EIDF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산업을 위한 플랫폼 마련을 위해 지난해 처음 인더스트리 행사를 시작했다. 독창적이고 잠재력 있는 장·단편 다큐멘터리를 지원하고, 국내외 다큐멘터리 산업 관계자들과 다큐 제작자들 간 연계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게 목표다. 영화제 기간 제작지원 프로그램과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한 아카데미도 연다. EBS 관계자는 이 행사를 “다큐멘터리 산업의 글로벌 강화를 위한 열쇠”라고 평가했다.

올해는 국내 및 해외 방송사, 배급사 등이 참여하는 비즈니스 미팅을 신설하여 다큐멘터리의 국내외 공동제작 및 배급, 투자에 관한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할 예정이다. 총상금 2억5000만원 규모로 지난 5월부터 한 달간 접수된 115편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가운데 최종 35편의 프로젝트가 선정됐다. 모든 수상작은 26일 인더스트리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형 사무국장은 “아직까지 우리 생활 수준에 비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층들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고 방송다큐멘터리는 좀 제작되고 있지만, 인디 다큐멘터리 영화는 굉장히 상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게다가 재능있는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제작지원이나 글로벌 마켓과의 연결 등 플랫폼이 없어서 해외 진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생충’이 워낙 큰 반향을 일으켜서 다소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스카 단편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 후보에 오른 세월호 참사를 다룬 한국영화 ‘부재의 기억’(이승준) 등이 더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2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