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테러로 미군 13명 등 100명가량이 희생된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안일한 아프간 철군 및 민간인 철수 계획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미 당국이 아프간에서 대피시키려던 아프간인 협조자들의 명단을 탈레반에 넘긴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미 의회는 아프간 철군의 명분과 과정을 떠나 “미국의 안보를 위해 탈레반과 협력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6일(현지시간) 미 정부와 의회 관계자 등 3명을 인용, 미 당국이 카불 공항으로 이동하는 미 시민과 아프간 협력자들이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이들의 명단을 탈레반에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탈레반에 넘어간 명단에는 미국 시민과 영주권자, 아프간특별이민비자(SIV) 신청자들이 포함됐다. 수만명의 아프간 협력자들을 신속하게 대피시키기 위해 명단을 넘겼지만, 결국 이 명단이 탈레반을 자극했고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탈레반은 카불 점령 이후 공항으로 이어지는 길에 검문소를 설치, 현지인들의 이동을 통제해왔다.
미군 당국이 아프간 철군 및 민간인 철수 과정에서 탈레반과 밀접하게 협력한 일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폴리티코는 군 관계자를 인용, 프랭크 맥켄지 미 중부사령관과 아프간 주둔 미군 수장인 피터 바셀리간 서면 및 구두 연락과정에 탈레반이 ‘아프간 파트너’(our Afghan partners)로 언급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지난 14일 탈레반의 카불 장악 이후 10만명 이상을 아프간으로부터 탈출시켰다. 탈레반이 철군 과정에 일부 협조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탈레반과 맺은 협정에 따른 것이지만, 이를 맹신하고 미군 철군 및 민간인 철수 계획을 밀어붙인 것은 너무 안일한 대처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폴리티코 보도 관련 질문에 “그런 명단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서도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이 탈레반과 접촉해 사람들을 버스에 태워 공항으로 옮겼고 탈레반도 이를 통과시켰다면서 “(예로) 12명의 명단이 있고, (탈레반은 버스에 탄) 그들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인과 현지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미군과 탈레반 사이에 총격전을 막기 위해 탈레반과의 협력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하지만 카불 공항에 인파가 몰리자 특별비자 신청자들에게 공항으로 오지 말고 입국 허가가 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요청했고, 이때부터 탈레반에 제공되는 명단에 아프간 현지인 명단이 제외됐다고 한다. 25일 현재, 미국 여권과 영주권 소지자만 대피 대상자로 인정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미 국방부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기본적으로 모든 아프간인을 살해 대상에 올려놓은 것”이라며 “끔찍하고 충격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은 연쇄 폭탄 테러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더 자세한 사항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미국인의 안전과 관련해 우리는 탈레반을 결코 믿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