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과잉 의전

의전(protocol)은 정부 내 공적인 행사나 국가 간 외교행사에서 지켜야 할 예의 및 규범을 말한다. 행사의 절반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주최 측은 신경을 곤두세우겠지만 의도하지 않은 실수는 종종 발생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2년 아프리카 가봉공화국을 순방했을 때 일이다. 공항 영접 행사에 참석한 전 전 대통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군악대가 우리 애국가가 아닌 북한 국가를 연주하는 불상사가 일어난 탓이다. 전 전 대통령이 노발대발하자 장세동 경호실장이 지휘자의 지휘봉을 쳐 떨어뜨림으로써 연주를 중단시켰다. 가봉의 독재자 오마르 봉고 대통령이 만찬 석상에서 공식사과해 수습됐지만 국가의 수준을 드러낸 외교 결례였다.

의전 신경전이 외교관계를 냉각시킨 경우도 있다. 17세기 영국 런던에서 각국 대사관이 스웨덴 대사 부임 환영행사를 마친 뒤 돌아오던 길이었다. 프랑스 대사관 사절단이 마차행렬의 선두에 서자 스페인 대사관 사절단이 갑자기 무장 호위병들을 동원해 그들을 마차에서 끄집어 내렸다. 마부들이 부상을 입는 등 큰 소란이 일었고 격노한 프랑스왕 루이 14세는 스페인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해 버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각 대장’으로 악명이 높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4시간15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3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70분을 기다린 뒤에야 그를 ‘알현’할 수 있었다. KGB 첩보원 시절 늦게 등장해 급하게 원하는 것을 몰아붙이는 심리 전술을 배워서 그렇다는데 글쎄다. 국격을 떨어뜨리고 부정적 이미지만 확산시키는 패착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국적자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한 강성국 법무차관에 대한 과잉 의전 논란이 시끄럽다. 10분 넘게 이어진 브리핑 내내 비가 내렸는데 법무부 부대변인이 강 차관 뒤에서 무릎을 꿇고 우산을 씌워준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지난 4월 행사에서 직접 든 우산이 뒤집어져 당황하던 장면과 대비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인권 보호를 언급했다. “저래놓고 무슨 인권 타령이냐”는 비난이 들끓는다. 인권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