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산업화를 바탕으로 대량생산이 보편화했고, 이 과정에서 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만큼 각종 쓰레기와 폐기물의 증가 또한 불가피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는 쓰레기와 폐기물의 증가세에도 힘을 실었다. 택배·배달이 급증하고 일회용품 소비도 늘었기 때문이다.
쓰레기의 증가는 전 지구적인 위협으로 급부상했지만, 이를 처리하는 업계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다. 처리 수요가 커지면서 관련 처리 단가가 높아지는 등 전환점이 찾아온 셈이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영세업체가 난립하는 모습이었지만, 글로벌 사모투자펀드(PEF)들이 눈독을 들인 데 이어 최근에는 대기업까지 미래 성장동력으로 인식하며 큰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이렇듯 혐오시설, 기피산업으로 분류되던 폐기물 처리업체들이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대표적인 ‘미래성장 분야’로 대접받으며 주가를 올리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국내 사업장폐기물 중간처분업체는 151개였는데, 이 중 시장점유율이 1% 이상인 업체는 37개에 그쳤다. 건설폐기물 처리업체의 경우 547개로, 이 중 시장점유율 1% 이상은 11곳에 불과했다. 이렇듯 영세업체들이 난립하던 시장이었지만, 2010년대 들어 PEF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역별로 난립하던 업체들을 인수해 묶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경영효율을 곁들여 몸값을 키운 것이다.
JP모간애셋매니지먼트는 2012년부터 4년여에 걸쳐 6개 업체를 인수해 EMK(에코매니지먼트)로 키워 2017년 IMM인베스트먼트에 4000억원에 매각했다. 어펄마캐피탈은 업체 6곳을 인수해 EMC홀딩스로 키웠고, 앵커에퀴티 또한 6개사를 합쳐 의료폐기물업체 ESG그룹으로 키워냈다. 맥쿼리PE는 코엔텍과 새한환경 등 업체 8곳을 인수하며 장악력을 확대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지속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지난해를 기점으로 대기업들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국내 폐기물처리업계에서는 SK에코플랜트와 태영그룹, IS동서 등이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태영그룹은 글로벌 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IS동서는 E&F PE와 손잡고 폐기물 산업 규모를 키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한환경의 경우 주인이 맥쿼리PE에서 IS동서·E&F PE, SK에코플랜트 등으로 연이어 바뀌는 등 수많은 M&A가 숨 가쁘게 진행됐다.
◆발생 느는데 처리는 지지부진… 단가 상승
폐기물 산업은 각종 산업과 소비의 최종 단계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럼에도 산업계든 소비자든 자신이 속한 단계를 지나 흐름의 말단에서 진행되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물론, 이미지상 기피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면 최근 수년 사이 PEF와 대기업들까지 나설 정도로 폐기물 산업의 매력이 급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폐기물 처리 산업은 전 산업에서 배출량이 꾸준히 증가하는 만큼 이에 대한 처리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즉, 경기를 타지 않기 때문에 꾸준한 실적 관리가 가능한 셈이다.
한국폐기물협회에 따르면 국내 전체 폐기물 발생은 2014년 40만1658t에서 2019년 49만7238t으로 5년 만에 23.8%가 늘었다. 2018년까지는 연간 4% 내외의 증가 폭을 보였지만, 2019년 들어 전년 대비 11.5%로 유독 증가 폭이 컸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택배나 배달음식의 이용이 늘면서 일회용품과 포장재 등의 배출이 늘어남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폐기물 배출량 증가가 더욱 확대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으로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매립시설 등 새로운 부지를 찾기도 힘든 데다 각종 환경 규제가 더해지며 지자체의 인허가를 받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여기에 지역·인근 주민의 ‘님비’(Not In My BackYard)까지 얽히며 신규 사업자의 진출이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생활폐기물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소각·매립 등 처리 시설을 설치한 뒤 이를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이다. 사업장폐기물과 건설폐기물 등은 전문 처리업체가 관리한다.
결국 발생은 지속 증가하지만, 처리 시설을 그만큼 확보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단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코엔텍의 경우 당 매립 처리 단가가 2018년 12만2200원에서 지난해 24만3700원으로 2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소각 단가는 같은 기간 14만5300원에서 17만6300원으로 올랐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국내 폐기물 시장 규모는 2015년 13조5000억원에서 2019년 17조4000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19조4000억원, 2025년엔 23조7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흐름은 고스란히 주가에 반영된다. 코스닥에 상장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KG ETS의 경우 코로나19 발발 직전인 2018년 12월28일 기준 3210원에서 지난달 30일 6배가 넘는 1만9900원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와이엔텍 4400원→1만4600원 △인선이엔티 6320원→1만2550원 △코엔텍 7640원→9230원으로 준수한 흐름을 보였다.
NH투자증권 백준기 연구원은 “폐기물 처리 기업의 수는 한정적인 반면 대형화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가격 협상력도 높아지고 있다”며 “미국 등에서도 그러했듯 장기적으로 대기업의 사업 영역에 포함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고 M&A에 따른 추가 성장 여력도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무늬만 ESG, M&A로 그린워싱 안 돼”
하지만 몸값 높이기, 덩치 불리기에 치중한 이 같은 흐름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인수와 합병, 매각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가치는 상승했지만, 이것이 폐기물 처리 관련 기술 개발로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SK에코플랜트의 경우 또한 ‘대기업의 폐기물 업체 쇼핑’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고, 지난해부터 이야기가 흘러나온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지나치게 몸값 불리기에 치중한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PEF와 대기업들이 이 업계에 뛰어들며 여러 폐기물 업체를 인수해 폐기물의 수집부터 중간처리, 매립, 소각 등에 이르는 밸류 체인 전반을 소화할 수 있는 종합 플랫폼으로 키우는 흐름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향후 전기차 시대 등 미래 시장의 변화에 발맞춰 폐차에서 폐배터리를 추출해 처리하는 등 새로운 사업 영역을 추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폐배터리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이나 무정전전원장치(UPS) 등으로 재사용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해체해 니켈이나 코발트, 리튬 등의 희귀금속을 회수하는 재활용 단계를 밟는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지난해 172억달러에서 2025년 232억달러(연평균 6.1% 성장)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귀금속이나 희토류 등 재료가 한정적인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국가별로 친환경 정책이 강화되고, 전기차의 생산 및 소비 확대에 따라 폐배터리 처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 또한 다른 폐기물 처리 분야와 마찬가지로 폐배터리의 수집, 처리 및 가공, 폐수 등 사후 폐기물에 대한 처리를 모두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ESG 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환경업체에 투자하고, 환경 관련 산업을 영위한다는 포트폴리오를 갖춰 기업 가치를 키우고 ESG 평가에서 가점을 받으려는 시도로 보인다”면서도 “실질적인 기술 개발이나 혁신 사례가 나오지 않는다면 목표했던 효과를 거두기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