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백신 불신·여성혐오 겹쳐 보건 담당 여성들 잇단 사임·피신 코로나 검사도 전주比 77% 줄어
탈레반 사면 약속에도 보복 자행 前정부 인사 등 억류·사형도 늘어 최고지도자 곧 대중 앞에 나설 듯 자체 정부 구성안 발표도 초읽기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탈레반의 불신, 그리고 특유의 여성 혐오 성향 등이 겹쳐 아프간의 코로나19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보복은 없다”는 약속과 달리 탈레반 치하에서 납치, 감금, 살해가 횡행하는 가운데 그간 베일에 가려 있던 탈레반 최고지도자가 곧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30일 미 의회조사국(CRS)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의 철군 개시 직전까지 아프간 당국의 코로나19 대응은 초기 단계에 머물렀다. CRS는 아프간에 지난 25일까지 공급된 코로나19 백신이 120만도스로 전체 인구의 5%가량에 불과하다면서 “의료 종사자, 언론인, 교사, 군인에 대한 백신 접종이 이제야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25일까지 아프간에선 15만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그중 7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건 전문가들은 아프간의 낮은 검사율과 국가 정보망 부족으로 실제 수치는 몇 배 더 많을 것으로 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주 아프간의 코로나19 검사 규모가 전주 대비 77% 줄었다고 우려했다.
아프간의 코로나19 대응 실패는 여성에 대한 탈레반의 무차별적 공격 등과 맞닿아 있다. CRS는 “WHO 직원을 포함해 아프간에서 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 고위직들의 사임이 잇따랐고 상당수 여성 직원도 살기 위해 피신했다”고 지적했다. 탈레반이 전통적으로 백신 접종에 부정적이란 점도 부정적 요인이라고 CRS는 지적했다. 아프간은 세계에 몇 남지 않은 소아마비 확산 지역인데 탈레반은 과거 소아마비 백신을 배포하던 보건당국을 여러 차례 공격했다. WHO 관계자들은 “탈레반의 보건당국 공격은 여전히 도전 과제”라며 울상을 짓고 있다.
미군의 철수 시한이 임박하며 아슈라프 가니 전 대통령 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겨냥한 탈레반의 보복 압력은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앞서 외쳤던 ‘용서’와 ‘사면’은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전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가니 정권에 복무한 주요 지도자들과 공무원들이 억류되고 심지어 사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달 중순 하지 물라 아차크자이 바드기스주 경찰청장이 탈레반에 의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물라 청장처럼 보복 대상 리스트에 올라 억류된 인물은 10여명으로 추정된다. 여기엔 지방자치단체장, 경찰서장, 정보기관 요원 등이 포함돼 있다.
탈레반 지도부가 납치, 구금, 살해 등 보복의 규모를 얼마로 정했는지는 미지수다. 다만 탈레반이 2주 전 카불을 장악하며 국가안보국(NSD)과 통신부 건물에 침입해 기밀서류를 찾아낸 만큼 보복을 이행할 준비는 확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관료 두 명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문서 파기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수천 건의 기밀문서와 급여 목록이 탈레반 손에 넘어갔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퍼트리샤 고스먼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탈레반이 매우 위협적으로 가니 정부 인사들을 색출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다만 전국 단위의 보복은 아직이며, 개인적 수준에서 보복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군 철수와 함께 탈레반의 자체 정부 구성안 발표도 임박했다. 내각 구성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그간 은둔해 온 탈레반 최고지도자 히바툴라 아쿤드자다가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탈레반 측은 “아쿤드자다는 곧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