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은 성범죄 전과자가 여성 2명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과 법무부의 부실한 초동 대응이 드러나면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자발찌는 재범 위험이 높은 강력범죄자들이 부착하는 만큼 훼손 시 강력 대응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경찰과 법무부에 따르면 이날 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강모(56)씨가 전자발찌를 끊은 것은 지난 27일 오후 5시31분쯤이다. 이후 강씨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지만, 법무부 산하 동부보호관찰소는 16시간 뒤인 28일 오전 9시20분쯤에야 서울동부지검에 강씨의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동부지검은 같은 날 오후 2시쯤 서울동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앞서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전날 자정쯤 동부지검 당직실을 찾아 영장을 신청했으나 긴급한 영장인지 당직 수사관과 소통이 잘 안 돼 그냥 되돌아 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강간·강도 상해 등 전과 14범인 강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는데도 영장 청구까지 20시간 이상 걸린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강씨는 전자발찌 훼손 전날인 26일 오후 9시30분∼10시쯤 평소 알고 지내던 A씨를 살해했으며, 시신을 자신의 집에 둔 채 도주했다. 경찰은 27일부터 다음 날까지 5차례에 걸쳐 강씨 집을 찾았으나 내부를 수색하지 않아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법무부 보호관찰소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이 강씨는 서울을 활보했다. 27일 주거지에서 4㎞가량 떨어진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서울 송파구) 인근에 전자발찌를 버린 뒤 렌터카를 몰고 서울역 쪽으로 이동했다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5호선 김포공항역까지 갔다. 이후 두 번째 피해자인 B씨의 차로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다 송파구로 돌아와 29일 오전 3시쯤 한 주차장에서 B씨를 살해했다. 경찰이나 보호관찰소 관계자가 27∼28일 강씨 집에서 A씨 시신을 발견하고 적극 대처했다면 B씨의 죽음은 막을 수도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강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금전적 관계가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생 초기 강씨의 집을 여러 차례 찾았던 경찰의 대처가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집 수색이 되지 않아) 안타깝다. (경찰이 함부로) 주거지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법적·제도적 한계가 있었다”면서도 “현장 경찰들이 적극적인 경찰권 행사를 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비난받을 소지가 더욱 크다. 지난 6월 사법경찰권 개정안이 시행돼 보호관찰소 소속 공무원이 사법경찰관 직무를 수행하며 수사도 할 수 있게 됐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사법경찰관 업무가 시행된 지 두 달 정도 됐고 전자발찌 훼손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적어 대처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체포영장 신청 자체가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폐쇄회로(CC)TV를 통해 피의자가 집에 없다는 것이 확인됐고, 집 수색보다 검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영장을 바로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집안을 수색해 도주 관련 단서를 얻을 수도 있었던 기회를 놓친 셈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전자발찌를 착용한 이들은 강력범이 많고 재범 위험성도 높다”며 “전자발찌를 훼손할 경우 초기부터 공권력을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법무부는 향후 △전자장치 견고성 개선 등 훼손 방지 △훼손 시 신속한 검거를 위한 경찰과의 공조체계 개선 △재범위험성 정도에 따른 지도감독 차별화 등의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한편 강씨는 2005년 11월 강도·절도·강도상해·특수강도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지난 5월초 출소했다. 강씨는 2005년 당시 일행 3명과 함께 약 40일 동안 여성 30여명을 위협해 강도, 강간 행각 등을 벌였고, 특히 강씨는 7차례의 강도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