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기 10위 그쳤지만… 다시 달리는 49세 ‘엄마 철인’

사이클 도로독주 완주한 이도연
탁구·육상·노르딕 ‘만능 스포츠인’
1일 주종목 개인도로 메달 도전
“돌아가신 아버지께 기쁨 드릴 것”
이도연이 31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국제스피드웨이에서 열린 도쿄패럴림픽 도로사이클 여자 도로독주 종목(스포츠등급 H4-5)에서 레이스를 치르고 있다. 시즈오카=연합뉴스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특히나 체력의 비중이 절대적인 종목들이 있다. 육상, 수영, 사이클 등의 장거리 종목들로 ‘완주’만으로도 선수들을 ‘철인’으로 부르곤 한다.

이도연(49·전북)은 패럴림픽에 나서는 한국대표팀에서 ‘철인’이라는 찬사를 가장 많이 들어본 선수 중 한 명이다. 19세이던 1991년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뒤 잃어버린 활력을 찾기 위해 탁구를 시작했던 그는 2012년 육상에 도전해 장애인 전국체전에서 창과 원반, 포환던지기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여기에 한 해 뒤에는 불혹이 넘은 나이에 사이클을 시작해 3년 만에 국가대표로 2016년 첫 패럴림픽까지 출전했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에서는 장거리 경기인 노르딕 종목에 나서 전 종목에서 완주했으니 철인 칭호를 듣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이도연이 패럴림픽 사이클 도로경기에 나서 또 한 번 의미 있는 레이스를 펼쳤다. 31일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국제스피드웨이에서 치러진 도쿄패럴림픽 도로사이클 여자 도로독주(스포츠등급 H4-5)에서 55분42초91로 결승선을 통과한 것. 순위는 12명 중 10위로 지난 리우대회 때 이 종목에서 기록했던 4위를 크게 밑돌았다.

도로독주는 선수마다 1분씩 간격을 두고 차례로 출발해 달리며, 8㎞ 코스 3바퀴를 최단시간에 도는 선수가 승자가 되는 경기다. 빗방울이 흩날리는 날씨에 경기에 나선 이도연은 첫 바퀴에서 17분35초25로 11위를 기록한 뒤 끝내 마지막 바퀴까지 순위를 한 단계밖에 높이지 못했다.

그래도, 완주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활약이었다. 이도연은 경기 뒤 “훈련한 만큼, 그 이상으로 했는데 성적을 못 냈다. 너무 죄송하다”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달리면서 정말 죽음까지 갈 정도로 열심히 달렸다”고 밝혔다.

“달리면서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 아버지께서 자전거 풀세트를 해주셨고, 항상 메달 따는 걸 기대하시다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레이스의 의미를 설명한 그는 “같이 있지는 못하지만, 아버지께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라도 내일 더 열심히 달릴 거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1일에는 5년 전 은메달을 따냈던 자신의 주종목인 여자 개인도로(H1-4)에 나선다. 이어 2일에는 혼성 단체전 계주(H1-5)에 출전한다.

한국에서 응원하고 있는 세 딸에게도 선전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우리 딸들, 어디에 있든 정말 사랑하는 존재이자 나의 힘”이라면서 “(메달을) 못 가져가도 우리 딸들이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겠지만, 엄마로서 열심히 해서 뭔가 보여주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