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첫발 뗐지만… 환경단체 “감축 목표 높여라” 반발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기후위기 대응법’ 국회 통과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 목표 명시
중간과제로 2030년 NDC 35% 감축
세계에서 14번째로 국가 목표 법제화

경제산업계선 “의견 반영 안 돼” 불만
그린피스 “EU·美 수준에 크게 못미처”
정부 “현실 고려해야… 40%까지 검토”

환경부서 5조원… 무공해차 보급 등 투입
범정부적으로 경제구조 저탄소사업 지원
2022년엔 2조5000억원 기후대응 기금 신설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뉴스1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의 토대가 될 기본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금부터 30년간 우리나라가 기후변화 정책을 세울 때 근간이 될 법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2050년까지의 여정에 중간목표를 확정하고 구체적인 이행체계와 이행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을 국가 목표로 법제화한 나라가 됐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 명시

탄소중립기본법 또는 ‘기후위기대응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명시했다. 이를 위한 중간과제로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35% 이상’으로 설정했다. 우리나라가 2018년 배출한 온실가스 총량에서 2030년까지 최소 35%를 줄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2018년 7억2763만t을 4억7296만t 수준까지 끌어내려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은 국내외에서 큰 이견이 없었지만 2030 NDC는 국가별로 천차만별이고 국내에서도 분야마다 입장이 다르다. 이 법 통과 전까지 우리나라의 기존 목표는 2018년 대비 ‘26.3%’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2030 NDC를 상향하겠다”고 밝혔으나 수치는 제시되지 않았다. 2030 NDC 기준 설정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탄소중립기본법 내용을 조율할 때부터 쟁점이 됐다. 정확한 비율은 향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명시했지만 경제·산업계는 지난달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이 의결되자마자 “산업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라”고 반발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2010년 배출량 기준 50% 감축”이란 급진적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유럽 국가들은 일찌감치 2030 NDC를 상향했다. 유럽연합(EU)은 1990년의 55%, 미국은 2005년의 50∼52%, 영국은 1990년의 68%를 각각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독일은 1990년 대비 65%, 덴마크는 같은 해 대비 70%란 적극적인 감축 목표를 수립했다. 2030년 목표의 기준점이 된 연도는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을 찍은 해다. 환경단체 등은 세계 여러 나라가 배출 정점을 기준으로 2030년 배출을 절반 가까이 줄이려 한다는 점에서 “우리도 50% 상당의 감축목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국가별로 저감 노력을 시작한 기간에서 차이가 커 우리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국회가 (하한선을) 35%로 정한 이유는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여러 이해관계 당사자와 국민이 더 논의할 수 있게 배려한 점도 있었다고 본다”며 “권고조항이지만 ‘정부는 2030 NDC를 40%까지 검토하라’는 의견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2030년 탄소배출 목표 놓고 논란

우리나라가 2018년 배출량(7억2763만t)을 2050년까지 선형(일직선)으로 감축한다고 가정해 선을 그으면, 2030년 목표는 37.5%가 된다. ‘35% 이상’이라는 기준은 이해관계자의 의견 조율 가능성을 열어놓은, 실질적인 2050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목표라는 것이다.

한 장관은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안을 두고 “국회 차원에서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평가했으나, 환경단체 등은 본회의 통과 후 즉각 비판 메시지를 내놨다. 그린피스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요구되는 2030년 목표를 국제사회와 과학계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하한선인 ‘2018년 대비 35% 이상’만을 법에 명시해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과학계는 2030년까지 2010년 배출량의 최소 45% 이상 감축이 필요하다고 경고했고, EU·미국·일본 등 주요 배출국은 감축 목표를 강화했다”면서 “한국의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과 역량을 고려할 때, 법안에서 제시된 하한선으로 중기 감축목표가 정해진다면 한국에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결과이고,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에 따라 공은 탄소중립위원회로 넘어갔다. 장다울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정책전문위원은 “탄소중립위원회는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한다”며 “법에 명시된 기본원칙과 최신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2030년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최소 50% 이상’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실효성 있는 실행계획 수립을 앞장서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은미 의원도 국회 본회의 반대토론에서 “2030 NDC는 2010년 배출량 대비 45% 이상을 감축해야 국제권고 기준에 부합한다. 이 기준을 우리나라에 적용해 2018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50.4%라는 수치가 나온다”며 “이번 탄소중립기본법은 고작 2018년 대비 35% 이상이라 전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2년 탄소중립 예산 12조… 2021년보다 62% 증가

 

탄소중립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내년도 예산은 기금안까지 합해 총 11조7900억원으로 설정됐다. 이 중 탄소중립에 투입하는 예산만 약 5조원이다. 탄소중립 달성까지 정부가 경제구조를 전환하는 데 투자를 증액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1일 환경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내년 탄소중립에 배정한 예산은 11조8768억원이다. 올해보다 62% 증가한 수치다. 이 중 환경부 예산은 약 5조원으로 40% 이상이다. 김영훈 환경부 기획조정실장은 “2050 탄소중립은 도전적 과제이나 꼭 가야 할 길”이라며 “내년도 환경부 예산안은 2050 탄소중립 이행기반을 구축해 나가는 데 역량을 집중했고, 집행단계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사업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까지 무공해차를 누적 50만대, 2025년까지 133만대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년에 추가 보급해야 할 무공해차는 23만6000대다. 환경부는 내년에 전기차 보급과 충전인프라 구축에 1조9352억원, 수소연료전지차 보급사업에는 8927억원을 투입한다. 노후경유차 조기폐차에는 3456억원, 배기가스 저감장치(DPF) 부착 지원에는 578억원을 각각 지출할 방침이다.

 

범정부적으로 산업부문에서 경제구조 저탄소화 사업에 책정한 예산은 8조3000억원이다. 환경부는 여기서 전국 98개소 사업장에 온실가스 감축설비를 지원할 879억원을 배정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보조율은 올해 50%에서 70%로 상향했다. 환경부 소속기관에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을 설치하고 건물 일체형 태양광 사업을 시험한다.

 

정부는 내년에 2조5000억원 규모의 기후대응기금도 신설한다. 이 기금은 탄소배출 감축을 유도하기 위한 탄소배출권 매각 등으로 생긴 수입으로 구성된다. 기금 지출은 탄소 감축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사용된다. 총지출 외에 환경부는 내년도 기후대응기금에 추가로 6972억원을 편성했다. 대표적으로 유연탄 설비를 사용하는 산업단지를 청정연료 설비로 전환하는 사업에 기후대응기금 100억원을 지원한다. 공공부문 온실가스 목표관리제 대상 기관에 신재생에너지 생산시설을 설치하는 데도 203억원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