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천주교 첫 순교 윤지충·권상연 유해 230년 만에 찾았다

전북 완주 초남이 성지서 발견

무연고분묘서 나온 백자사발석
복자들의 인적사항 적혀 있어
전주교구 정밀감식 통해 확인
유골엔 처형 당시 손상 흔적도
윤지충 동생 윤지헌도 발견돼
교계 “피의 순교史 밝힐 증거”
윤지충 바오로의 목뼈에 참수형의 흔적이 남은 모습. 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한국 천주교 역사 첫 순교자 유해가 사후 230여년이 지나 발견됐다. ‘피의 순교’로 뿌리를 내린 한국 천주교는 이번 유해 발견이 “이 땅에서 천주교 역사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중대 사건”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1일 전북 전주 ‘호남의 사도 유항검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를 지난 3월 전북 완주 초남이 성지의 바우배기(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169-17)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전주교구는 교회법적 절차와 정밀 감식을 거쳐 ‘이들이 유해의 주인이 확실하다’는 교령을 이날 공포했다.



천주교가 신자들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복자(福者)’인 이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우리나라 천주교 첫 순교자다.

전라도 진산(현 충남 금산) 출신인 윤지충은 고산 윤선도 후손으로 고종사촌인 정약용에게 천주교를 접한 뒤 인척인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1791년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태운 ‘폐제분주’ 사건으로 대역죄인이 돼 전주 남문 밖(전동성당 터)에서 참수당했다. 같은 지역 양반가이자 윤지충 사촌인 권상연도 같은 죄명으로 함께 처형됐다.

유해가 함께 발견된 윤지헌 프란치스코는 윤지충 동생으로, 형이 순교하고 10년이 지난 1801년 신유박해 때 능지처참형을 당했다. 이들은 모두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諡福·복자로 추대함)됐다. 유해가 발견된 바우배기는 전라도 최초의 신자이자 ‘호남의 사도’로 불린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가족 소유 땅이었다. 세 복자와 유항검은 사촌지간으로, 유항검이 이들의 유해를 수습해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발견된 전북 완주 초남이 성지 바우배기. 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이 일대에서는 세 복자를 비롯해 총 10기의 무연고 분묘가 발견됐는데, 이중 5호기와 3호기에서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백자사발지석이 나왔다. 전문가들이 백자사발지석을 판독한 결과 각각 윤지충과 권상연 인적사항에 일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주교구는 추가적인 정밀 분석을 통해 두 복자가 유해 주인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선 방사성탄소연대측정에서 묘지 조성 연대가 두 복자가 순교한 1791년에 부합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어 치아와 골화도를 통한 연령 및 해부학적 조사, Y염색체 부계 확인검사(Y-STR) 등을 거쳐 최종 결론을 내렸다.

윤지충 바오로의 백자사발지석. 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권상연 야고보의 백자사발지석. 천주교 전주교구 제공

또 8호기 유해는 윤지충과 해부학적으로 유사했는데, 사료를 검토하고 유해를 정밀 감식해 윤지헌과 부합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유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의 유해 목뼈와 윤지헌의 목뼈, 양쪽 위팔뼈, 왼쪽 대퇴골에서는 날카로운 도구로 자른 흔적인 ‘예기 손상’이 발견됐다. 전주교구는 이를 참수와 능지처사형 흔적으로 봤다.

전주교구는 “첫 순교자 묘와 유해 발견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부족하고 모호한 부분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천주교에서 시성(諡聖)된 103위 성인 중에서 유해가 확인된 경우는 27명, 시복된 124위 복자 중에서는 19명뿐이다.

전주교구장인 김선태 주교는 기자회견에서 “유해 발견은 실로 놀라운 기념비적 사건”이라며 “순교자들의 피를 밑거름 삼아 성장해온 우리 교회가 순교역사에서 첫 자리를 차지하시는 분들의 유해를 비로소 찾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기쁨을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