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의전’ 이전엔 ‘우산 지붕’, ‘노룩 패스’가… 황제의전 논란史

법무부 차관, ‘우산 의전’에 사과…“이유 불문 사과”
정치인·고위 관료 논란 과거에도…‘노룩패스’ 대표적
“사소한 일부터 상급자가 직접 나서야 의전 해체”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 지난 8월 27일 충북 진천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 초기 정착 지원과 관련해 브리핑하는 도중 관계자가 뒤쪽에서 무릎을 꿇고 우산을 받쳐주고 있다. 연합뉴스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의전(儀典)’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의전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상명하복식 수직 문화 속 의전은 ‘상급자를 모시는 일’로 여겨진다. “일의 실패는 용서해도 의전 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최근 구설에 오른 강성국 법무부 차관의 ‘우산 의전’은 과잉 의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강 차관은 지난달 27일 충북 진천군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 입국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10여분간 브리핑했다.

 

논란이 시작된 것은 강 차관의 뒷모습이 보도되면서다. 비가 오는 야외에서 브리핑이 진행되는 동안 법무부 관계자가 무릎을 꿇은 채 강 차관에게 우산을 받쳐준 것이다. 현장 취재진의 요청에 따라 직원이 중계 화면에 잡히지 않게 몸을 피하면서 발생한 일이라고 법무부 측은 해명했지만 여론은 들끓었다.

 

결국 강 차관은 “엄숙하고 효율적인 브리핑이 이뤄지도록 저희 직원이 몸을 사리지 않고 진력을 다하는 숨은 노력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국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사과했다.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의 ‘황제 의전’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또한 과거 비슷한 일로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2017년 5월 김 전 대표는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과정에서 마중 나온 수행원에게 바퀴가 달린 여행 가방을 한 손으로 밀어 보냈다. 수행원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방을 미는 모습에 일부 네티즌들은 ‘노룩(no look) 패스’라며 김 전 대표를 비판했다.

 

지난 2017년 5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 당시 그가 수행원를 보지도 않고 캐리어 가방만 밀어 보내는 모습에 ‘노 룩(no look) 패스’란 비판이 나왔다. 연합뉴스

◆김무성 ‘노룩 패스’, 황교안 ‘영하 야외 행사’…반복되는 논란

 

김 전 대표 역시 우산과 관련된 의전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2014년 8월 전남 순천대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차량에서 건물 입구까지 우산을 들고 일렬로 선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됐다. 김 전 대표를 포함한 회의 참석자들이 비를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우산 지붕’을 만든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또한 국무총리 재임 시절 수차례 과잉 의전 논란을 겪었다. 2015년 7월 서울 구로노인종합복지관 방문 당시 황 총리를 태우기 위해 관계자가 엘리베이터를 정지시키는 바람에, 정작 복지관을 이용하는 노인들은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포착돼 국민적 공분을 샀다. 2016년엔 황 총리의 열차 탑승을 돕기 위해 관용 차량이 서울역 기차 승강장까지 진입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14년 8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전남 순천대 건물 입구에서 관계자들이 우산을 들고 서 있다. JTBC 화면 캡처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뒤에도 황제 의전 꼬리표는 따라붙었다. 2017년 1월 황 권한대행은 충남 논산시 육군 훈련소에서 열린 훈련병 수료식에 참석했다.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한 취지였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겨울철에는 실내 강당에서 수료식을 진행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의전 및 경호 문제로 야외에서 행사를 치르기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영하 13도에 달하는 한파 속에서 장병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도 마찬가지다. 홍 의원은 2017년 7월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충북 청주시 수해 현장을 찾은 바 있다. 문제가 된 것은 홍 의원이 장화를 신고 벗는 과정이었다. 홍 의원이 선 채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자 한 관계자가 허리를 숙여 장화를 신겨준 것이다. 한 수행원이 허리를 숙인 채 직접 홍 의원의 장화를 벗기는 모습도 포착됐다.

 

지난 2017년 7월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충북 청주시 수해 현장에서 장화를 신는 모습. 연합뉴스

◆수혜자에겐 권위, 공여자에겐 습관…“상급자가 의전 해체해야”

 

논란이 반복되는데도 황제 의전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의도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은 저서 ‘의전의 민낯’을 통해 “받는 사람에게는 권위를 살리는 방편이 되고, 행하는 사람에게는 습관이고 관행이기 때문”이라며 “의전에 싸인 리더는 자신이 제법 근사하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착각한다”고 꼬집었다.

 

‘의전 해체’는 수혜자가 먼저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 허 전 사무총장의 지적이다. 그는 △임원진 비서를 통합할 것 △상급자가 직접 식사 약속을 잡고 식당을 예약할 것 △집무 공간을 최대한 줄일 것 △수행 비서가 차 문을 열게 하지 말 것 △관용차 앞 좌석을 당기지 말 것 등 사소한 일부터 상급자가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