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년간 주둔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군한 가운데 “아프간에 대한 원조가 이어지지 않으면 이달말 식량이 고갈될 것”이라는 유엔 관계자의 경고가 나왔다.
유엔 아프간 특별대표부 사무총장 대리인 라미즈 알락바로프 박사는 1일(현지시간) 카불에서 화상으로 진행한 간담회에서 “아프간인의 1/3 이상이 식량 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가난한 겨울이 빠르게 오고 있으며 추가 지원이 없으면 이달 안에 식량 재고가 바닥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AP통신은 “아프간의 식량 불안 위기는 탈레반이 정권을 탈취한 후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지금까지 아프간에 식량을 지원하는 구호활동이 이어져왔지만 아프간 구호금으로 요구한 13억달러 가운데 4억달러만 지원됐다고 밝혔다.
아프간에서는 올해 가뭄과 분쟁 등으로 55만명가량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알락바로프 박사는 3800만명의 인구 가운데 1400만명이 식량 불안에 떨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프간에서는 앞으로 언제 식사를 하게될지 모르는 경우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장기간의 가뭄과 전쟁, 코로나19 등이 겹치면서 전국적으로 식량 불안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아프간은 지난 20년간 국제 원조에 의존해왔고 대부분은 유엔을 통해 전달됐다.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 국가들도 주요 원조국이었는데,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지원도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프간에서 광범위한 인도적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엔은 아프간에 계속 주둔하고 있지만 탈레반이 장악한 이후 대부분의 물자를 보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서방국가들이 아프간에 추가 구호활동을 용인하고, 탈레반에 포용적 정부 구성과 여성 권리 보장 등을 이행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미국은 아프간에 대한 인도적 지원 통로를 남겨두면서도 탈레반의 자금줄을 옥죄는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이미 미 재무부는 지난달 25일 아프간의 인도적 지원을 승인하는 특별 허가조처를 했다. 미 정부와 계약자들은 내년 3월까지는 음식과 의료품 전달 등 아프간 국민을 지원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비정부기구나 세계보건기구(WHO), WFP 등을 통해 아프간 지원을 이어갈 방침이다.
반면 미국은 탈레반의 자금줄을 옥죄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 중앙은행이 미국 연방중앙은행 등에 예치한 자산을 동결했다. 아프간 측 자산은 90억달러로 이 중 70억달러가 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지난달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향해 진격하자 아프간으로의 달러화 수송을 중단하는 긴급 결정을 내렸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도 탈레반 돈줄 차단을 돕고있다.
탈레반 자금줄을 막으면 마약 판매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미국의 입장은 완고하다. 향후 탈레반과 각종 현안 협상을 염두에 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탈레반의 정부 구성 등 아프간이 신속하게 안정화하지 않으면 식량 위기도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