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가는 곳/리베카 긱스/배동근 옮김/바다출판사/1만9800원
세상에는 아무도 본 적 없는 고래가 있다. 실제로 부채이빨고래의 존재는 지난 140년 동안 단 한 차례만 보고됐다. 죽은 고래의 몸은 심해에서 풍요로운 생태계가 되기에 해저의 오아시스로 불린다. 우리는 여전히 고래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오직 고래만이 알고 있는 자연의 진실이 있다.
책 ‘고래가 가는 곳’은 지구상 최대 생물 고래에 대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추적한다. 수천 년 전부터 인간과 이어져 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본래 네 발 달린 포유류 동물에서 유래한 진화적 기원과 최신 과학계 보고 등 이 시대 우리가 고래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그리고 이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저자의 문장과 태도에는 기후 위기 시대에 대한 고민이 깃들어 있다.
저자는 감상에 빠지기보다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그러모은다. 그는 과학적 소양에 바탕을 둔 상상력으로 우리가 다른 생명체의 감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이 책에 따르면 고래는 대기질에 영향을 끼친다. 깊이 잠수할 수 있어서 서식 반경이 심해까지 미치는 향고래의 경우 전 세계 대기질 구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2010년 나왔다. 심해에서 오징어와 크릴을 먹은 고래의 배설은 영양분 구실을 하며 해저 수많은 유기물질의 순환을 돕는다. 그 과정에서 플랑크톤 번성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플랑크톤들은 전 지구적 규모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마치 숲이 기후 조절 역할을 하는 것과 비슷한데, 고래 한 마리는 1000그루 이상의 나무 수준의 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래의 귀지는 ‘대양의 핵심 표본’으로 불린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를 입증하는 말랑말랑한 귀지인데 야채 보관실에 오랫동안 내버려 둔 셀러리같이 생겼다. 생물학자들은 이 귀지로 고래의 나이와 그 고래가 평생 노출되었던 오염, 혹은 육체적 스트레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고래의 눈도 신비롭다. 직사광선을 맞은 인간의 동공은 수축하지만, 대부분 고래의 동공은 미소를 짓듯 반원으로 수축하면서 반원의 구석에 동그란 점이 남는다. 각각의 눈에 두 개의 동공이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책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래의 다양한 모습을 전해준다. 크릴새우를 잡아먹는 혹등고래의 젖은 핑크빛에 버터 맛이 나며 성게 불모지에서 먹을 것이 없어진 범고래는 팝콘을 먹어 치우듯이 해달을 잡아먹는다. 또한 고래 낙하라고 불리는 죽은 고래의 몸은 그 자체로 심해의 생태계를 구성한다.
저자는 고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자연을 다루는 방식을 꼬집는다. 인간에게는 다른 생명체와 환경을 생각하는 선천적 애착이 있다는 게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 사랑 개념이다. 해변에 떠밀려온 귀여운 아기 돌고래와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군중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돌고래는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는 동안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윌슨의 말대로 생명 사랑을 타고난 인간이라도 그 사랑이 상대를 질식시키지 않게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인간 행위의 간접적 여파에까지 우리의 상상이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다른 동물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