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징용 피해자의 유족이 가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또다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박성인 부장판사는 8일 일제징용 피해자 정모씨의 자녀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유족은 2019년 4월15일 “강제노역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2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기각이유는 지난달 역시 박 부장판사가 패소 판결한 다른 소송과 마찬가지로 유족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의 시효가 지나 소멸됐다는 것이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 권리는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혹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와 가해자를 피해자가 안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강제노역은 10년이 훨씬 지난 사건이지만,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던 점이 인정돼 이 사유가 해소된 시점부터 3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소송 청구 권리가 인정된다.
앞서 강제노역 피해자 4명은 일본제철을 상대로 2005년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심 패소 후 2012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2018년 재상고심에서 최종 승소했다. 파기환송 당시 대법원은 일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과 상관없이 소멸하지 않았다며 일제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손해배상 청구를 막는 장애 사유 해소 시점을 대법원 파기환송(2012년)이나 확정판결(2018년) 중 언제로 봐야 할지에 대한 법원 판단은 엇갈린다.
박 부장판사는 이날 “상고법원으로부터 사건을 환송받은 법원은 상고법원이 파기 이유로 한 사실·법률상 판단에 기속된다”며 “원고들의 객관적 권리행사 장애 사유는 2018년 10월 30일 자 대법원 판결이 아닌 2012년 5월 24일 판결로서 이미 해소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박 부장판사의 두 차례 판결과 같은 취지의 판결도 현재 대법원에 2건 계류돼 있다. 하지만 2018년 10월로 시효를 계산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광주고법 판결도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결국 시효 문제를 둘러싼 혼선 역시 대법원에서 정리돼야 하는 셈이다.
이날 선고가 끝난 뒤 정씨 등의 대리인은 “광주고법 판례는 2018년을 기산점으로 삼아 다퉈볼 필요성이 있다”며 항소 의사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