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시련에 처한 바이든의 외교

아프간 철군에 국제사회 신뢰 추락
“中·러시아 등 견제 집중” 밝혔지만
코로나·경제 등 국내문제 더 중점
글로벌 리더십 부재 당분간 지속

아프간 철군 이후 미국의 대외전략과 향후 국제정세 전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평가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처럼 아프간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감수하고 물러난 것인가. 그렇다면 향후 국제정세에서 바이든이 공언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회복은 가능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바이든 행정부가 처한 외교정책 환경과 우선순위를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환경과 새로운 국제질서를 규정하는 특징으로는 코로나 19 팬데믹, 국제체제의 분절화, 세계경제 침체, 미중관계 악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장

국제체제 분절화의 원인은 글로벌 리더십의 부재가 큰 원인이다. 근간 국제질서에서 민주주의를 비롯한 각종 국제 레짐(체제)과 제도의 퇴조, 거버넌스(협치)의 약화는 미중 패권경쟁의 일부로서 전개되는 강대국 정치, 뚜렷한 주도세력이 없는 ‘G-zero시대’, 심지어 ‘궐위’의 시대로 불리는 현 국제질서의 특징이다. 이러한 국제정세 혼란상에 비해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대응은 대체로 국내적 상황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현재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것들은 코로나19 대응, 경제회복, 기후변화, 인프라 재건 등 대부분이 국내 문제이다. 외교정책에서 트럼프의 뒤를 이은 중국 때리기 외에는 이렇다 할 특징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바이든은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n is back)’고 선언했지만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회복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리더십은 일정한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한다. 국제관계에서 리더십은 간단히 말하자면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하려는 의지와 역량에서 발생한다. 국내 문제에 함몰된 바이든 행정부가 과연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을까.

최근 야반도주하듯 이뤄진 미군의 아프간 철군은 상징적으로 미국 리더십 약화, 신뢰의 실추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의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에 막대한 전비를 더 이상 쏟아붓고 싶지 않은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간 철군을 단행한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철군을 하더라도 상황을 주시하며 현명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바이든 행정부는 간과했다. 철군 이후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비난이 커지는 것은 철군 결정 자체가 아니라 철군 과정 관리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아프간에서 철군한 주된 이유가 중국, 러시아 등 경쟁자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 국내문제가 더 급선무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텍사스주 낙태법 대응, 예상보다 더딘 경기회복, 트럼프 진영의 공세 등 바이든에게는 다양한 악재들이 중층적으로 밀려오고 있다. 특히 날로 악화되는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다. 델타 변이 확산 이후 중증 환자가 늘면서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세는 백신이 없던 1년 전보다도 오히려 더 심각하다.

이런 탓에 당분간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부재 상황은 지속될 전망이다. 아프간 철수작전이 종료된 후 바이든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 결정이 옳은 결정이며 미국을 위해 현명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의 연설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철군으로 바이든 외교의 두 축인 가치·규범 외교와 동맹·네트워크 다자협력은 결정적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아프간 철군으로 대중국 견제에 좀 더 확고하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지만 미국 외교의 대외적 신뢰성 추락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아프간 철군이 한국에 주는 교훈도 분명하다. 한국은 아프간과 다르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를 주한미군의 철수와 연관지어 보는 것은 가능성도 없고 너무 자기비하적 평가다. 아프간 사태가 주는 명백한 교훈은 우리의 안보는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에 앞서 우리가 먼저 자강의 의지와 역량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가운데 우리부터 그런 의지가 없으면 한미동맹이 앞으로 60년을 더 간다 해도 한국을 결코 지켜주지 못한다. 베트남 패망의 역사가 그랬고, 아프간 철군이 주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