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곤의 인류 멸종 시나리오-기후 붕괴, 지옥문이 열린다/마이클 클레어/고호관 옮김/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2만원
“기후변화는 사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기후변화 ‘회의론자’보다는 ‘혐오자’에 가까웠다. 2017년 3월 트럼프는 대통령직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들을 무효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석 달 후엔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공무원들은 ‘기후변화‘, ‘온실가스 감축’ 같은 단어를 더는 입에 올릴 수 없었다. 대신 필요한 경우 ‘극단적인 날씨’, ‘토양 유기물 증진’ 등으로 바꿔 부르는 촌극이 일상이 됐다. 트럼프를 수장으로 둔 정부 기관들은 모두 이 같은 기조를 잘 따랐다. 단 한 곳, 국방부만 제외하고.
미국 안보 전문가인 마이클 클레어는 ‘기후 붕괴, 지옥문이 열린다’에서 펜타곤 보고서와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기후변화가 군과 사회에 끼칠 영향을 비롯해 강대국 간 이해관계 충돌, 국제관계 변화 양상을 제시한다.
30만명의 사망자, 27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2003년 수단 다르푸르 사태는 기후변화가 분쟁을 촉발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시 극심한 가뭄으로 사하라사막이 확장함에 따라 갈 곳이 없어진 북부 아랍계 민병대가 남부 기독교 흑인 부족을 상대로 ‘인종청소’를 벌였다. 10년째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역시 가뭄이 분쟁을 촉발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됐고, 소말리아 내전도 비슷한 양상으로 벌어졌다.
그동안 이 같은 분쟁들이 대부분 해당 국가의 문제로 그쳤지만, 저자는 기후변화가 보다 직접적인 국가 간 충돌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특히 북극이 그 첫 번째 지역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북극의 얼음이 빠르게 녹으면서, 한때 접근 불가능했던 이 지역에서 이제 석유 시추를 비롯한 여러 경제 활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북극을 둘러싼 미국,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는 북극의 탄화수소 자원 개발에 관심을 보이며 북극에서의 군사훈련을 시작했거나 계획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심지어 북극권 국가가 아닌 중국도 자원 개발에 관심을 보이며 쇄빙선을 만들고 있다.
또 다른 분쟁 가능 지역은 바로 히말라야산맥에서 출발해 중국과 인도를 지나는 브라마푸트라강이다. 이 강은 중국 수력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자 인도 농업의 중요 수자원이다. 양국은 1962년 이 지역을 두고 전쟁을 벌였지만 여전히 소유권 논란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미 국가정보위원회(NIC)는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줄어들면 브라마푸트라강 외에도 인더스강, 양쯔강 등의 유량이 줄어 수억명의 식수와 관개용수를 공급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결국 물 부족으로 소요가 일어날 수 있고, 양국의 충돌까지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브라마푸트라강 상류의 물줄기를 돌리려는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책은 미군이 기후변화에 취약한 동맹국의 안보를 지키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혼돈과 참사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강조한다. 2014~2016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박쥐를 매개로 번지자, 국제 위기로 번질 것을 우려한 미국 아프리카 사령부는 응급 병원과 진료소를 세우고 다른 나라에서 온 의사와 의료진을 지원하는 등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에볼라와 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팬데믹을 막고 백신을 확보하는 데 미국과 주변국의 협력과 연대가 중요함을 알 수 있는 사례다.
저자는 “미군은 심각한 기후 재난에 대비해 비상 구호품을 축적하고 합동 재난 구호 훈련을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외국 군대와 협력했다”며 “이러한 노력은 위기의 순간에 인류가 생존하려면 이와 같은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인식을 보여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