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곳에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환자들이 오지 않았죠. 대부분 사망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이 장소를 더 많이 알아야 해요.” 9·11 테러 20주기를 일주일 앞둔 지난 4일 미국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서 만난 백발의 앤(79·여)은 20년 전 9월 11일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저는 그때도 지금도 뉴욕에 살아요. 그 당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었고, 그날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죠. 사고 소식을 듣고 먼저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보건당국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이곳에 의료진으로 나왔죠. 그날 바위덩이들과 덤프트럭이 오가는 모습이 아직 기억나요.”
9·11을 계기로 만들어진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지난달 13일 “9·11 20주기를 전후로 다양하고 도전적인 위협 환경에 계속 직면하고 있고, 종교적 기념일 등이 폭력행위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공포는 대물림된다. 이날 하얀 정복을 입고 그라운드 제로를 찾은 미 군사학교 학생 레이(18·여)는 “9·11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매년 학교에서 9·11에 대해 배웠다”며 “이곳에 오니 무거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미국이 20년 전과 비교해 테러의 위험에서 안전해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이전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아프간 사태를 보며 안전하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가장 긴 전쟁’이라고 하는 아프간 전쟁이 20년 만에 끝났지만 뉴욕, 그리고 미국엔 또다시 테러의 공포가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