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2월 이후 첫 통화를 하면서 경색된 미중관계에 개선의지를 내비쳤다. 핵심은 양국의 경쟁이 갈등으로 승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두 나라의 책임을 논의한 데 있었다. 여기서 난제는 미국이 제기하는 중국의 인권문제다. 격세지감인 게 1896년 8월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은 미국 방문에서는 미국의 인권문제를 제기했다.
이홍장은 미국을 방문한 청나라의 첫 고위관료였다. 이에 앞서 그는 2월부터 서구의 7개국을 방문했다. 8월에 뉴욕에 도착하자 미국은 19발의 예포로 그를 ‘국빈’급 인사로 환영했다. 그가 워싱턴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29일 뉴욕에까지 와서 그와 오찬을 가졌다. 이홍장은 또한 그의 오래된 미국 친구에게 예를 갖추는 걸 잊지 않았다. 이미 작고한 그랜트 전 대통령의 묘를 방문하고 헌화했다.
그의 방문 목적과 미국에 대한 인상은 9월 3일 12명의 미국기자와의 회견이 뉴욕타임스에 게재되면서 밝혀졌다. 기자들은 미국의 중국이민금지법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마치 기다린 듯 그는 미국이 법안을 조속히 수정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를 경제논리로 부연했다. 미국이 중국시장에서 유럽에 열세인 이유로 미국의 비싼 임금을 지적했다. 저렴한 양질의 노동력을 중국인이 제공하는데 이를 막고 있다는 역설적인 현실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미국이 중국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의 발전과 미국의 이익에 ‘윈·윈’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의 언론 사정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는 중국에서도 신문이 발간되나 미국과 같은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했다. 미국 언론은 진상을 밝힐 수 있지만 중국에는 정부의 통제로 제약이 있다고 고백했다. 청 조정은 그의 발언을 모욕으로 여겨 9월 귀국 후 그를 경질했다. 미중 사이에 인권과 자유의 문제는 오래됐다. 인권문제의 대상이 바뀌었지만 언론의 자유 문제가 여전히 존속하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