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용’, ‘엄정대응’….
중소기업 기술보호와 기술탈취에 대한 엄단은 정부와 정치권의 단골 구호이자 약속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매년 1000억원대 기술탈취가 이뤄지고 있을 정도로 중소기업 기술탈취는 한국 산업·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고질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정부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할 경우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등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노력에도 중소기업 10곳 중 4곳은 정부의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정책에 대해 ‘불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익 재단법인 ‘경청’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연매출 1억원 이상의 중소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 결과 ‘매우 만족한다’와 ‘만족하는 편’이라는 응답은 10.7%에 그쳤다. 반면 ‘매우 불만족’(4.2%), ‘불만족하는 편’(35.6%) 등 불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40%에 육박했다.
중소기업이 기업 활동을 원활히 지속할 수 있기 위해 추진돼야 할 정책으로는 시장의 공정성 확립(28.5%)이 1순위로 꼽혔다. 금융 세제 지원 강화가 24.0%, 중소기업 기술개발 지원강화가 11.3%로 뒤를 이었다.
◆상생법 개정안 통과… 이번엔 달라질까
이 같은 상황에서 중소기업계에서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이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기대를 하는 분위기다. 상생법 개정안은 지난 7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지난달 1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내년 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법안에 입증책임 완화 등 중소기업계의 숙원이 반영된 만큼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간 정부가 마련한 여러 가지 중소기업 기술보호 대책은 단편적인 법·제도 개선에 머무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현장에서도 법 제정·개정과 관계없이 대기업이 납품업체인 중소기업에 기술자료를 요구하고, 제공받은 기술자료를 이용해 납품업체를 이원화한 후 기존에 납품하던 중소기업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발주 자체를 중단하는 사례가 계속됐다.
이 같은 지적을 반영해 이번 상생법 개정안은 △기술자료를 제공할 경우 ‘비밀유지계약(NDA) 체결 의무화’ △수탁기업의 입증책임 부담 완화 규정 마련 △기술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부과 등의 내용을 담았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소기업 보유 기술에 대한 침해 가능성은 사전에 차단하고 소송 절차에서도 중소기업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기술탈취 근절 대책을 점검하고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손승우 중앙대 교수(산업보안과)는 “이 법안은 서로 간의 입장이 조율이 안 돼 오랜 기간 논의됐는데 다행스럽게 통과가 됐다”며 “상생 협력 차원에서 큰 틀에서 법을 잘 안착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도 환영의 뜻을 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상생법 개정을 통해 기술자료 제공 시 비밀유지 협약이 의무화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이 될 예정”이라며 “특히 중소기업의 최대 난제였던 기술탈취에 대한 입증 책임도 대기업과 분담하게 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들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개정된 법률을 통한 기술탈취 방지 정책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면밀한 사후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실효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