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농협’이라는 이름을 믿고 2017년 7월 자신의 땅을 담보로 제공했다가 큰 피해를 봤다. B축산물유통업체 대표가 A씨에게 “부경양돈농협과 축산물 공급계약을 맺으려면 담보가 필요하다”며 부탁을 해왔다. A씨는 자신의 2만4462㎡ 규모 땅에 부경양돈을 채권자로 20억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줬다. 다만 ‘거래한도는 5억원으로, 외상거래는 10일 이내로, 한 번이라도 연체 등이 있으면 금액을 축소한다’는 계약도 함께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B업체의 외상거래대금 연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부경양돈농협은 거래한도의 4배에 달하는 18억5000만원 상당의 육류를 B업체에 출고했다. A씨는 B업체가 종적을 감춘 후 ‘경매예고장’이 오고 나서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됐다. 부경양돈농협 측은 A씨에게 ‘거래대금을 갚지 않으면 땅을 즉시 경매에 넘기겠다’고 했고,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연 10%가 넘는 이자로 15억440여만원을 대신 갚아야 했다. 농협은 A씨에게 남은 원금 11억원도 상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10명 중 8명 ‘경징계’… 솜방망이 제재
그런데도 외상거래를 한도를 초과한 거래는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세계일보가 복수의 의원실을 통해 농·축협으로부터 받은 ‘2016~2020년 농·축협 외상매출금 한도 초과 관련 지적 및 징계 현황’을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감사에 적발된 사례는 321건에 달했다. 그러나 징계로 이어진 것은 16건에 불과했다.
징계 종류(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별로는 징계를 받은 직원 118명 중 99.2%인 117명이 ‘경징계‘ 처분에 그쳤다. 단순주의를 주는 정도인 ‘견책’이 41명, 그보다 낮은 수준의 징계인 ‘주의’가 60명이었다. 급여를 깎는 감봉은 16명이었다. 중징계 처분은 정직 1명에 불과했고 파면·해임은 한 명도 없었다.
외상거래 한도를 초과한 거래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농협중앙회 정기감사에서도 단골 지적대상이다. 감사에서 지적받은 기관이 재차 적발된 사례도 있다. 부경양돈농협의 경우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정기감사에서 기관경고와 시정조치를 받았지만 고쳐지지 않아 2016년 감사와 2018년 감사에서 또 외상매출금 한도를 초과한 물품 공급이 19건 적발됐다. 이때에도 거래를 담당했던 직원들은 ‘견책’ 이하의 경징계를 받았다.
이에 대해 농협 측은 “외상거래 문제는 사건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며 “또 감사에 적발되면 거래당사자가 외상대금을 갚는 경우가 많아 이럴 경우 징계까지 이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엄격한 징계·관리시스템 구축 필요
그러나 이 같은 솜방망이 징계가 문제를 반복하고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두환 불법시민감시위원회 위원장은 “매년 똑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엄격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삼진아웃제’와 같이 처벌규정을 보다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시민감시위원회 측은 2010년 수협 비위를 대표적 예로 들었다. 수협의 경우 2010년 외상거래 한도를 초과한 거래를 허용한 지점장 등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무더기 실형을 선고받은 뒤 외상거래 한도 초과한 거래가 급감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수협에서 한도를 초과한 외상거래로 감사에 적발된 사례는 4건에 불과했다.
류 위원장은 “외상한도거래 약정금액과 기간을 전산시스템에 설정하고, 초과 거래를 하면 전산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강력한 제어조치가 필요하다”며 “자정능력을 이미 상실했다면 외부기관을 적극 활용하는 등 정부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