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안녕, 트루먼도서관의 고려청자

900여년 된 ‘보물'… 완전한 복구는 언제?

스물한 개의 주름으로 된 높은 굽, 여덟 개의 능 같은 참외 모양의 몸체, 상감기법으로 새겨 넣은 흰색 모란과 국화 무늬, 기다란 목, 참외 꽃을 형상화한 입….

지금도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2014년 12월 한 국내 일간지에 실린 ‘트루먼 준국보급 청자 68년째 상처투성이로’ 제하의 기사에 실린 사진 속 국보급 고려청자 참외모양 병의 모습이다. 얼핏 보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114호 ‘청자상감모란국화문참외모양병(靑磁象嵌牡丹菊花文瓜形甁)’과 비슷해 보인다.

김용출 선임기자

기사의 요지는 1946년 방미한 장리욱 한국교육위원회 단장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이 고려청자 병을 선물했는데, 현재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시에 위치한 트루먼대통령기념도서관에 어설프게 복원돼 전시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고려청자의 상처 자국이 선명했다. 굽과 입 쪽에 황금색 조각으로 때운 듯한. 고려청자 병을 건네는 상고머리 장 단장의 긴장한 모습과 선물을 건네받던 트루먼의 환하게 웃는 표정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것도.

이때 불현듯 900년 가까운 험난한 삶을 헤쳐 온 고려청자가 말을 거는 듯한 묘한 느낌이 받았는데.

‘고려사’ 등에 의하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등을 겪었던 고려의 제17대 임금 인종은 38세가 되던 1146년 승하해 나성(羅城) 남쪽의 장릉(長陵)에 묻혔다.

1916년, 도굴꾼과 결탁한 일본 골동품상이 장릉의 출토품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팔아넘기면서 장릉과 그 유물이 다시 주목받았다. 게다가 총독부 박물관에 일괄 구입된 장릉 유물들은 도굴 경력 때문에 한동안 진위 논란도 일기도 했다.

인종의 장릉 유물 가운데 하나였던 고려청자 참외모양병이 미군정 시절 백악관을 예방한 장 단장의 손을 거쳐 트루먼 대통령에게 선물로 건네진 것이었다. 조국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이 고려청자는 트루먼의 인디펜던스 사택 다락방에 보관돼 있다가 1980년대 초 트루먼도서관에 기증됐고, 다시 10여년이 흐른 뒤 1993년에야 그 존재가 확인돼 복원작업 끝에 1995년 일반에 공개됐다.

이 사이, 재미있는 ‘사건’도 벌어졌다. 그건 바로 주한 미대사관에서 근무했고 ‘회오리의 한국정치’의 저자인 그레고리 헨더슨과 유력 언론 등이 전개한 고려청자 찾아내기 캠페인.

그러니까, 헨더슨은 1980년쯤 잡지 ‘한국의 목소리(Voice of Korea)’를 뒤지다가 우연히 장 단장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선물로 준 고려청자 사진과 기사를 발견했다. 행방이 궁금했던 그는 백악관은 물론 트루먼도서관과 트루먼 사저, 스미소니언박물관 등을 조회했다. 심지어 작고하기 직전의 트루먼 부인과 그의 딸에게도 문의했지만 알지 못했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그는 1985년 4월15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사연을 소개하고 이 고려청자를 찾아내자는 캠페인을 제안했고, ‘워싱턴포스트’가 그해 5월10일자 칼럼 ‘사라진 접시의 수수께끼’를 써서 이를 거들었다는.

아침저녁으로 옆구리가 시리기 시작한 이 가을, 갈급하게 궁금했다. 지금도 트루먼도서관의 현관에서 관람객을 맞을 고려청자 병은 잘 있을까. 문화재청은 2014년 보도 당시 원상복구 문제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연구소 등 관계 기관과 논의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