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예고편이었다”… 탄력 붙은 집값 어떻게 잡나

8월 1.29% 올라… 2008년 6월 이후 최고
2006년 당시 월 1∼3% 폭증 재연 우려
풍부한 유동성 장세 등 영향 오를 여력 커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타워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강남의 아파트 단지. 서상배 선임기자

정부가 수요억제와 공급확대를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집값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지면서 지난달 전국 주택가격이 2011년 4월 이후 월간 단위로 최고 상승률을 찍었다.

 

출구가 막힌 재고주택 시장과 뒤늦은 신규주택 공급 확대, 풍부한 유동성 장세 등이 어우러지면서 집값 추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다 월간 상승률이 1∼3%대를 넘나들었던 지난 2006년 말과 2007년 초의 ‘미친 집값’ 사태가 재연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월간 전국 주택종합 매매가격은 0.96%로 전월 0.85% 대비 오름폭이 확대됐다. 이는 지난 2011년 4월의 1.14%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수도권(1.17%→1.29%)과 서울(0.60%→0.68%), 지방(0.57%→0.67%) 모두에서 상승폭이 확대됐다.

 

서울·인천·경기를 포함한 수도권 집값이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오르면서 전국 상승세를 견인했다.

 

지난달 수도권의 주택종합 매매가격은 1.29% 올라 전월 1.17%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2008년 6월(1.80%) 이후 13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서울과 인천, 경기 모두 각각 지난해 7월, 3월, 2007년 1월 이후 상승률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추세로 볼 때 9월 전국 집값 상승률이 1%대를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월간 집값 상승률이 1%를 웃돈 달은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월까지 4개월과 2008년 3·4월과 6월, 2011년 4월 외에는 없었다.

 

최근의 금리 인상과 은행의 대출 죄기에도 수도권 주택매매시장 심리지수(국토연구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탠다. 이 지수는 0∼200 범위에서 100을 넘기면 주택가격 하락보다는 상승을 점치는 응답자가 많다는 뜻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집값은 당분간 우상향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기준금리를 올린다 해도 단박에 4∼5%대로 정상화할 수 없어 유동성이 부동산에 계속 흘러들고, 정부에서 양도세 등으로 다주택자를 규제해 재고주택 공급이 불가능하고, 신도시는 빨라야 2025년에야 입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정부는 비(非)아파트 규제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1∼2인 가구 주택 수요 대응과 단기 주택공급에 기여할 수 있는 도심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해 비아파트에 대한 면적 기준과 바닥난방 등 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피스텔 등의 비아파트 역시 당장 공급되는 게 아니고, 된다 해도 규모가 작아 집값 불안을 잠재울 대안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또한 홍 부총리는 국회에서 다주택자 매물 시장 출현 방안으로 거론되는 양도소득세 완화에 대해 “(완화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오피스텔 공급해 아파트 수요 대체?… “주거환경 악화” 우려만

 

멈출 줄 모르는 집값·전셋값 동반 상승세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가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물량 폭탄’ 수준의 공급대책에도 부동산 시장이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로 수요를 분산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서민과 젊은층을 본래 용도에 맞지 않는 오피스텔에 살게 하는 식으로 아파트값을 안정시키려는 계획은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활동가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장기전세주택 자산을 시세대로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공공주택을 확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국토교통부가 15일 발표한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아파트 공급속도 제고방안’에는 오피스텔에 바닥난방을 허용하는 전용면적 상한을 85㎡에서 120㎡로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렇게 되면 4인 이상 가구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30평대 중대형 주거용 오피스텔이 나올 수 있다.

 

도시형생활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건축 기준도 완화된다. 도시형생활주택은 크기에 따라 원룸형과 단지형 다세대, 단지형 연립으로 나뉘는데 원룸형을 아예 소형으로 개편하고 허용면적을 50㎡에서 60㎡로 넓혀주기로 했다.

 

국토부는 이들 비아파트의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주택도시기금 융자 한도를 높이고 금리도 인하한다. 민간 건설사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매입약정을 맺고 오피스텔 등을 공급할 때는 과밀억제권역에 적용되는 취득세 중과를 배제해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파트 공급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주택건설 과정의 지자체 통합심의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렇게 되면 인허가 기간이 평균 9개월에서 2개월로 단축될 수 있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관리제도도 개선한다. 인근 지역의 모든 사업장의 평균 시세를 반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규모나 브랜드 등을 감안한 유사 사업장을 선별 적용하고, 선정 기준도 완화하기로 했다. 현재는 분양가 심사 가이드라인만 공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심사 세부기준도 공개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정책방향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주거환경 악화와 난개발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공급을 다변화하고, 공급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은 맞지만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은 아파트보다는 빠르게 공급할 수 있고, 젊은층이 빌라보다 선호한다는 측면은 있다”면서도 “주차장이나 실제 주거면적이 좁아질 수밖에 없고 관리비는 더 많이 들어서 서민·중산층 가구가 살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결국 서민의 평균적인 주거여건이 악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임시방편 역할에 그칠 뿐 장기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오피스텔과 도시형생활주택은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아 집값 안정에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도심 내 자투리땅을 활용해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건물 간 거리가 짧아져서 일조권과 조망권을 갖추지 못한 주택이 늘어나는 등 난개발 우려도 나온다. 오피스텔의 경우 주거용으로 쓰면서 업무용으로 신고해 종합부동산세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회피하는 등 탈세에 악용될 수 소지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오피스텔 등이 아파트의 대체재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전매제한이나 실거주 규제가 없어 분양시장의 투기적 가수요가 유입될 우려가 있다”며 “다주택자의 진입 문턱이 높은 대출, 세제, 청약 등 아파트 규제 회피 목적의 풍선효과 부작용에 대해 지속적인 정책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대책 불신에 넘치는 유동성… “집값 잡기 역부족”

 

문재인정부가 25회에 걸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 시행 중이지만 전국 집값이 현 정부를 넘어 이명박정부 때인 2011년 4월 이후 월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한국은행이 지난달 2년9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은행권이 잇따라 대출 조이기에 나섰지만 주택구매 수요는 좀처럼 줄지 않는 모양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16일부터 비규제 지역, 시세 6억원 이하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운용 기준을 기존 ‘100∼120% 이내’에서 ‘70% 이내’로 강화하기로 했다. 전세자금대출 가운데 생활안정자금대출의 DSR 기준도 ‘100% 이내’에서 ‘70% 이내’로 낮아진다. 신규 코픽스(COFIX)를 지표금리로 삼는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의 변동금리(6개월주기 변동)의 우대금리는 각 0.15%포인트 줄인다.

 

최근 한 달 사이 은행권 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신규 취급액 기준)는 0.07%포인트 올라 8월 1.02%를 기록했다. 시중 은행들은 당장 16일부터 신규 주담대에 코픽스 금리 수준을 반영하게 된다.

 

그런데도 국토연구원의 8월 부동산시장 소비자심리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 주택매매시장 심리지수가 148.9로 전월 145.7보다 3.2포인트 올랐다. 1년 만의 최고치다. 수도권은 7월대비 2.1포인트 오른 148.4로 역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규제 홍수 속에도 이처럼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높아지는 배경으론 공급부족 우려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성 유입 등이 거론된다. 현 정부는 임기 중반까지 주택공급이 수요 대비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집하다 임기 말에 이른 지난해 2·4대책 이후부터 방향을 바꿔 공급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들 주택은 공급까지 3∼5년의 시차가 있기에 당장의 집값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현 정부 부동산 대책에 대한 국민 신뢰 저하다. 지금껏 최소 1개월에서 최대 약 3개월에 한 번꼴로 발표된 대책은 그 효과를 기대하기도 전에 큰 틀에서 방향이 바뀌고 서로 충돌하는 난맥상을 보였다. 2017년에는 임대사업 등록을 장려하다 지금은 임대사업자를 투기꾼 대접하는 게 현 정부다.

 

대출을 규제하면 앞으로 더 집 사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해서 더 빨리 집을 사려는 수요가 재차 ‘영끌’, ‘패닉바잉’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택 거래의 특성을 보면 주택가격 하락 시기 주택 구입을 보류하고 주택가격 상승 때 주택 구매를 서둘러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