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연대기/셰릴 빈트·마크 볼드/송경아 옮김/허블/1만7000원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전쟁 특수와 시장 방임주의, 대중의 욕망이 뜨겁게 분출하던 1926년 4월, 작가 휴고 건스백(Hugo Gernsback)은 최초의 본격적인 SF 잡지 ‘어메이징 스토리스’를 창간했다. 이때 건스백이 발행인 겸 편집장으로서 잡지의 내용과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가 바로 SF, 즉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었다.
그는 잡지 ‘어메이징 스토리스’에서 애드거 앨런 포와 쥘 베른, H G 웰스 등의 작품을 집중 조명했다. 즉, 그는 포가 과학적 지식에 의지해 소설을 지어내고 과학적 데이터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통해 상상력을 안정시켜 나간 점을 평가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으로 알려진 쥘 베른이 과학적 데이터를 써서 서사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을, 웰스의 경우 과학 특히 진화론에서 유래하거나 기댄 추측과 비유하는 점을 각각 주목했다.
세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SF는 과연 무엇이고, 그것의 특징은 무엇일까. SF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문학과 미디어를 강의하는 셰릴 빈트 UC리버사이드 교수와 마크 볼드 웨스트오브잉글랜드대 교수는 책에서 SF의 역사와 주요 작품을 되짚어 보면서 SF의 개념과 특징을 정립하려 한다.
저자들은 먼저 SF라는 장르가 정의돼온 다양한 방식들과 작가와 평론가, 편집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SF를 ‘인지적 소격(疏隔)의 문학’으로 이해한 다르코 수빈의 주장이 재밌다. 그는 세계를 낯설게 보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 개념을 적용 발전시켜, ‘소격의 시선’이야말로 SF의 가장 중요한 형식적 기준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동일시 효과를 강조하는 판타지와 구별하게 한다는 분석이다.
저자들은 이어서 SF의 경향과 주요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검토한다. 제2장에서는 SF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부터 있었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식민지 모험소설’ ‘미래의 전쟁’ 등의 과학 소설의 계보를, 3장에선 건스백의 ‘어메이징 스토리스’를 중심으로 SF가 확산하는 1930년대의 경향과 작품을, 4장에서는 SF 황금시대를 열었던 잡지인 캠벨의 ‘어스타운딩’과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등이 활약한 1940년대 주요 작가과 작품을 차례로 살핀다.
5장에서는 냉전과 소비지상주의 속에서 전쟁 후유증과 핵에 대한 불안을 다루는 1950년대 경향과 작품을, 6장과 7장은 SF가 하드SF와 소프트SF, 좌파 SF와 우파 SF, 뉴웨이브, 페미니즘 등으로 분열하는 1960∼70년대 경향과 작품을, 8장과 9장에서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 사이버 펑크의 성장과 다양한 장르와의 혼합을 중심으로 1980∼90년대 경향과 작품을 차례로 분석한다. 마지막에는 21세기 다양한 흐름 속에서 SF의 미래를 조망한다.
SF의 역사와 큰 흐름이라는 여정을 마친 저자들이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그들은 SF란 결국 과학과 시대, 역사와 사람 등과 뒤섞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흐름이나 과정이라고 이해한 듯하다. 하나의 형태나 갈래로 고정돼 있지 않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명멸하는.
수많은 작가와 작품이 나오면서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함께 여행을 다녀오면 문학적 상상력의 또다른 극한인 SF의 역사나 주요 작품, 개념에 대한 큰 흐름이나 미니 맵이 보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