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가 350조원에 달하는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가 파산 위기에 처하며 중국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부동산시장의 문제가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중국판 리먼 사태’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헝다가 채무 불이행(디폴트)에 직면하겠지만 중국 금융시스템의 전반적 안정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팽팽히 맞선다.
1997년 광저우에서 설립돼 중국 2위의 부동산 개발업체로 성장한 헝다는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2019년 전기차 시장에도 뛰어들어 20억달러(약 2조2300억원) 자본금으로 헝다신에너지자동차를 설립했다. 2014년 전지현과 김수현이 광고에 출연한 헝다빙촨 생수를 비롯해 식용유, 분유, 테마파크, 관광, 헬스케어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헝다가 은행과 신탁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자금 규모만도 5718억위안(약 105조원)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의 만기가 올해 안에 몰렸다. 결국 시장에선 헝다가 디폴트 선언에 이르게 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대세다.
20일 연휴 중 문을 연 홍콩 증시에서 헝다를 위시한 중국 본토 및 홍콩의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대표 지수인 항셍지수가 3% 급락했다.
신용분석업체 리오르그 애널리스트 제임스 스는 “중국 정부는 거품이 낀 부동산 분야의 디레버리징(부채 감축) 드라이브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헝다에 구명 밧줄을 던져줄 가능성은 작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문제는 부동산 분야가 중국의 ‘회색 코뿔소’(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로 부실채권 위험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금융 시스템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업계가 무너지면 이들 업체와 거래한 대형 국유은행들이 천문학적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면서 금융 시스템에 큰 충격이 가해지는 ‘중국판 리먼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헝다의 중국 내 거래 은행에는 공상은행과 농업은행, 민생은행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거물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지난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중국 투자를 확대한 것이 ‘비극적 실수’라고 비판하면서 “블랙록의 펀드매니저들은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위기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디폴트로 부동산 업체 간의 신용 양극화가 심해지고 일부 소형 은행도 난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중국 당국이 헝다가 ‘대마’(大馬)이기는 하지만 시장 원칙에 따라 ‘질서 있게’ 파산할 수 있도록 개입하면 그 충격이 부동산 업계에 그치고 금융 시스템 위기로까지 전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가 시스템의 안정이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헝다를 지원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중국 정부가 구제에 나선다면 부동산 분야의 고삐를 죄려는 당국의 캠페인을 약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는 헝다의 위기가 다른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에도 파장이 미칠 경우에만 디폴트 방지 지원에 나설 것”이라며 “이는 중국 전체의 금융 시스템과 경제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금융 소프트웨어 제공사 뮤렉스의 분석가 알렉산더 본은 “헝다 위기가 실물 경제를 통해 금융 시장에 영향을 끼칠 위험은 있다”면서도 “우리는 중국판 아시아 금융 위기의 문 앞에 서 있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