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종전선언보다 北 비핵화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

김여정 “적대정책부터 철회해야”
美 “한·미간 대북접근 전술상 차이”
文정부 대북정책 과속해선 안 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반응이 나왔다. 리태성 외무성 부상이 어제 담화에서 “시기상조”라며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남아 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톤을 낮춘 담화를 내놨다.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의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면서도 “적대시정책 철회 등 선결조건이 마련돼야 의의 있는 종전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북남 사이에 다시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며 건설적인 논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현 시점에선 대북 적대시정책이 철회돼야 북·미, 남북간 대화 재개와 종전선언 추진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다.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만 늘어놓는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문 대통령은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는 했지만 핵실험이라든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의 모라토리엄(유예)을 유지하고 있다”며 “북한이 저강도 긴장 고조만 하고, 여전히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안일한 상황 인식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북한 핵이 상당히 고도화되고 진전도 이뤄 평화협상과 별개로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하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북한 핵무기를 용인하면서 평화협상을 해나가자는 것으로 해석되면 논란이 일 소지도 없지 않다.



작금의 한반도 정세는 종전선언 추진에 매달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이달만 해도 북한은 장거리 순항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다. 순항미사일은 처음으로 1500㎞까지 비행했고,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탄두 중량을 2.5t까지 늘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 노동당 대회에서 공언한 대로 “중단없는 핵무력 건설”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에 따르면 북한은 영변 핵단지 내 우라늄 농축시설을 확장하고 있다. 확장공사가 이뤼지면 농축우라늄을 25% 더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대북 접근에 대한 한·미간 견해 차도 불거지고 있다.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한미연구소(ICAS) 주최 화상 대담에서 “한국과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지만 전술상에 차이가 있다”며 “한국 정부는 (북한) 사람들을 테이블에 데려오는 방안으로 유인책을 제공하는 데 있어 우리가 더 빨리 움직이기를 원한다. 우리의 접근은 그와 다르다”고 했다.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서는 주한미군 주둔이나 한·미동맹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잘못된 인상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 미국의 우려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 방미를 수행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중국 주장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중국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심상치 않다.

정부는 임기말 대북정책에 속도를 내선 안 된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종전선언 추진이 아니라 북한 무력도발에 대비하면서 보다 창의적인 북한 비핵화 해법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