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른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가 지난 24일로 마감하면서 국내 가상화폐 시장은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한 업계 1위 업비트를 비롯한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대 거래소 체제가 본격 개막됐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영되던 66개 가상화폐 거래소 중 지난 24일까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사업자 신고접수를 마친 거래소는 29개다. 이중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코빗만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했고, 나머지 25개 거래소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은 확보했지만,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해 앞으로 가상화폐로만 코인을 거래하는 코인 마켓만 운영할 수 있다. ISMS 인증조차도 획득하지 못해 마감일까지 신고하지 못한 37개 거래소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원화 마켓 운영 여부에 따라 투자자들의 돈이 몰리는 단위 자체가 달라진다. 코인으로만 거래하는 거래소에서는 수익이 나더라도 현금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타성 투자가 많은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특정 거래소에 대한 충성심이 약하다. 굳이 코인마켓만 운영하는 거래소를 고집해 해당 거래소에서 수익을 본 뒤 이를 다시 현금 출금이 가능한 4대 거래소로 코인을 옮기는 수고로움을 행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5월 초만 해도 100억달러 대의 거래대금을 유지하며 업비트와 빗썸에 이어 업계 3위를 달리던 코인빗의 예를 보면 그 차이가 극명해진다.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해 지난 19일 원화 마켓 운영 종료를 공지한 코인빗은 지난 24일 오전 10시 기준 최근 24시간 거래대금은 27만5059달러로 5월초에 비해 99.7%나 줄었다.
문제는 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원화 마켓 운영을 포기한 거래소 중에는 규모나 체계 면에서 4대 거래소에 못지않은 곳도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 전체가 자금세탁 리스크 등을 이유로 거래소들에게 실명계좌를 내주길 꺼려하는 상황 속에 금융당국이 특금법을 앞세워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밀어붙이면서 건실한 거래소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됐다. 이들은 고객 이탈뿐만 아니라 인력 이탈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가상화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인 마켓만 운영해야 하는 거래소를 운영하는 인력들이 4대 거래소로 옮겨갈 경우 가상화폐 시장의 4대 거래소 체제는 한층 더 공고해질 수 있다”면서 “한국의 가상화폐 시장이 더 성장하려면 특정 거래소의 과점체제보다는 여러 거래소에서 다양한 가상화폐들이 상장되고 거래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현재의 4대 거래소 체제도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들이 은행권과 맺은 실명계좌 제휴가 한시적이어서 재논의 과정에서 상황이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과 제휴계약을 이번에 갱신한 코빗도 그간 6개월 단위로 계약을 맺었으나 이번엔 12월까지만 제휴를 맺은 상황이다. 이번 계약 갱신은 사업자 마감 신고가 임박해 내준 것일 뿐 은행권이 가상화폐 거래소의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감시체계를 강화하고 업계 동향을 살필 계획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신고를 마친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심사를 진행하면서 수사기관과 함께 미신고 영업 행위 단속에 나선다.
가상화폐 간 거래만 지원하는 ‘코인마켓’의 운영자로 신고한 거래소가 변경 신고 없이 원화 거래를 지원하는 ‘원화마켓’을 운영하거나, 애초 신고하지 않은 거래소가 가상화폐 관련 영업을 하는 경우가 없는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미신고 영업을 한 것이 적발되면 5000만원 이하 벌금이나 5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