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 초남이성지는 천주교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는 구전이 전해지던 곳이다. 실제 누구의 유해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2005년 초남이성지로 부임받은 김환철 신부가 이곳에 십자고상(十字苦像)을 세워 묘지임을 나타냈을 뿐이다. 지난 3월 초남이성지 김성봉 신부가 이 일대를 성역화하면서 무연고 분묘 10기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중 5기와 3기에서는 분묘의 주인을 기록한 백자사발 지석(誌石)이 나왔는데, 한국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것이었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유해 발굴 이후 약 4개월간의 분석을 거친 뒤 유해가 순교자들의 것이 확실하다는 교령을 선포했다. 교회법적 절차와 정밀감식에서 유해의 주인을 확인했다는 의미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순교자들의 역사가 230여년 만에 실체로 드러난 셈이다. 지난 24일 초남이성지에서 열린 ‘유해 진정성에 관한 보고회’에서 김성봉 신부는 “지극히 드문 경우라 참고할 사례를 찾기도 어려웠다”며 “유해의 진정성에 대한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교회 문서를 바탕으로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윤지충 키 165.2㎝, 치주질환 앓아”
전주교구는 지석을 판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고학·해부학적 검증을 거쳐 유해의 주인을 확인했다. 먼저 세 순교자의 유해를 분석한 결과 뼈의 형태가 아시아계 남성의 것으로 판별됐다. 이들의 넙다리뼈(대퇴골)와 정강이뼈로 봤을 때 실제 신장은 윤지충이 165.2±3.8㎝, 권상연은 152.5±3.8㎝, 윤지헌은 163.9±3.8㎝로 추정됐다. 이들 뼈와 치아로 사망 당시 연령을 분석한 결과 세 순교자에 부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지충의 경우 생전의 치아 상태를 추정할 수 있었는데 13·12·22·23번 치아가 충치라는 점도 파악됐다.
유해에는 세 순교자가 겪은 참형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났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유해의 대부분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다. 하지만 윤지충은 목뼈에서 예기(銳器·날카로운 도구) 손상이 관찰됐고, 권상연은 목뼈 일부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참수형의 흔적으로 추정됐다. 윤지헌의 경우에는 팔꿈치 아래와 무릎 아래의 뼈가 없었는데 능지처참형으로 사지가 절단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 유해는 안동권씨 친족 5명과 해남윤씨 친족 5명의 유전자와 대조를 거쳐 동일 부계의 혈연관계라는 점이 확인됐다. 형제지간인 윤지충과 윤지헌의 유해 역시 동일 부계로 파악됐다.
전주교구는 지난 4개월간의 분석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추후에도 지석에 표기된 무덤 조성 시기와 복자들의 실제 순교 시점의 차이 등을 분석한다는 계획이다. 치명자산성지의 김영수 헨리코 신부는 “이 보고서에 담긴 교회사적, 문화사적 성과의 기록이 앞으로 순교자들의 신앙 연구와 현양에 기여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